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봉헌생활의 날에...-오상선신부-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2 조회수339 추천수1 반대(0) 신고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


중심 미사 직전에 초를 축복한다. 교우들은 “보라, 우리 주님…….”이란 노래를 부를 때 촛불을 켠다. 초를 축복한 후 행렬을 하거나, 성대한 입당식을 가질 수 있다. 성당에 들어오면서 ‘시메온의 노래’나 ‘입당송’을 하고 곧 ‘대영광송’을 한다. 주례 사제는 예식 시작 때부터 제의를 입을 수 있다.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6세기에는 시리아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었고, 로마는 7세기 후반에 이를 받아들였다. 8세기 중반에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18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주님 봉헌’으로 바뀌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이하는 이 봉헌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루카. 2,22-40)




봉헌생활의 날에...

-오상선신부-


오늘은 예수님의 봉헌축일인 동시에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수도자들의 봉헌축일이다.
이름하여 <봉헌생활의 날>이라고 한다.

수도생활을 봉헌생활(Vita Consecrata)라 칭함은 아마도 수도생활의 본질이 '바치는 데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바치는 삶, 비우는 삶,  결국 자신은 없어지는 삶이 수도생활이란 말일게다.

수도자들의 날을 맞이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얼마나 주님께 바쳐드리고 있는지 반성해봐야겠다.
과연 내 삶이 바치는 삶이었는가?
끝없이 비우는 삶이었는가?
끝없이 자신을 죽이는 삶이었는가?

정말로 내가 봉헌의 삶을 제대로만 산다는 내가 없어져 있기에
그 어떤 오욕칠정에도 사로잡힘이 없이 늘 복됨을 누릴진대 아직도 그렇지 못함은 이 봉헌생활이 온전히 성취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모 수녀원 종신서원식에 참석한다.
종신서원은 바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서약이다.
수도생활은 이렇게 끊임없이 바쳐드리는 삶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치고 또 바치고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의 목숨을 바쳐드림으로써 봉헌생활을 완성하게 된다.

봉헌성가를 부를 때마다 내 몸과 맘을 다 바쳐드리오니 받아달라고 하지 않는가?
수도자의 삶은 봉헌성가를 진정으로 몸으로 부르는 삶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진정한 봉헌생활이 될 수 있으리라.

오늘,
내가 아는 수사님, 수녀님들께 축하인사를 드리자. 오랜만에 메일이나 전화라도 드리면 어떨까?
자신을 태워 없애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처럼 늘 자신을 내어놓고 버리고 바쳐드림으로써 봉헌생활을 완성하시도록 기도해 드리자.

그 옛날 예수님께서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상의 봉헌으로 봉헌생활을 완성하셨듯이 모든 수도자들도 자신의 서약으로 봉헌한 삶을 끊임없이 버리고 바쳐드리는 삶을 통해  완성에로 나아가시도록 말이다...

모든 수사님, 수녀님들 축하드립니다!
더욱더 봉헌의 삶, 아름다운 비움의 삶에 정진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성소가 아니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성소로 불러주신 주님께 오늘 하루 질퍽하게 감사를 드립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