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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항상 감사와 영광 드러내는 삶을/신앙의 해[7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4 조회수365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림 : [터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분수 정원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어떤 이를 구해 주신다.
그에겐 많은 귀신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이 ‘군대’란다.
그는 무덤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그는 괴성을 지르며 자기 몸을 돌로 치곤하였다.

생각하면 가련한 사람이다.
뭔지 모를 나쁜 영에 사로잡혀 정신 이상자처럼 살기에.
사람들은 그가 동네를 내려오는 것을 막으려고 쇠사슬로 묶어 두었단다.
그는 한 마리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사람을 예수님은 낫게 하셨다.
말씀 한마디로 자유롭게 하신 것이다.
어두운 영에 사로잡혔던 그를 광명의 세계로 끌어내신 게다.
예수님의 능력의 힘을 볼 수 있다.

우리 주위에도 그 사람 못지않게 어두운 세계에 갇혀 있는 이들이 많다.
본능이든 습관이든, 아니면 고통스러운 체험이든,
무언가가 사슬이 되어 그를 묶고 있다.
자유를 위해서는 주님의 은총이 필요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악령이 돼지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의 유다인에겐 이해될 게다.
율법에 돼지는 금지된 동물이었기 때문에
이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순교한 이들도 있었단다.
그만큼 부정한 동물로 여겼기에 악령이 돼지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리라.
이어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만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더러움의 상징인 돼지 떼가 물에 빠짐으로써 마을 전체가 정화되었다.
이로써 마을에는 죽음과 단절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놀라운 은혜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장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었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역시 세상의 논리에 사로잡혀 그분의 자비로운 섭리를 무심히 여기지는 않을까?

마귀가 들렸던 정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다들 그만 겁이 났다.
이방인들은 이를 보고 놀랄 수밖에.
그래서 예수님더러 그곳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한다.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를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셨기에.
그래서 그들에게는 예수님은 역시나 두려운 분이셨다.
모르면 이렇게 두려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쇠사슬과 족쇄까지도
부술 정도의 괴력으로 악령에 사로잡힌 이를 치유해 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이 한 영혼 구원된 사건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느껴야 할 게다.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밖에.
이로써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고 공동체에는 평화를 안길 수 있다.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치는 바로 인간구원이다.
이 구원과 해방에 비할 수 있을 만한
현실적 이익이나 물질적 가치는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없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은
악령 들린 사람을 구원하신 거와 진배없는 주님의 기적으로 이어간다.
이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그분을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신앙의 해를 보내는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항상 그 모든 것에 감사와 그분 영광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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