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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으로 하느님다운 숨김 [따지지 않는 이유]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6 조회수388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마르코 6,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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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요셉의 아들'이라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존경을 하지 않나 봅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분은 예언자라며 존경을 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하시며 안타까와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성서에 나타난 실제 역사를 통해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거하였기 때문에(민수 11:25-, 1사무 10:6 · 10, 19:20 · 23)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사람 (1사무 2:27, 1열왕 12:22, 13:1-, 17:24, 20:28) 또는 성령의 사람 (호세 9:7)이라고도 한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 · 현재 · 미래를 다 예언의 소재로 했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하기도 했으며, 예언자직은 예언자가 되기를 꺼려하거나 예언자적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도 강제적으로 주어진다(아모 3:7-8, 예레 1:7-8). 하느님은 그의 말씀을 예언자에게 전한다(이사 6:9, 예레 1:7-9, 에제 2:8-3:3)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엘리야와 엘리사(Elisae) 같은 이들도 나타나는데 이들의 말은 거의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이들도 다른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의 영감적인 전달자였다. <이상 출처 ;  가톨릭대사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가 아니십니다. [교리서
65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시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 하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에 놀라와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요셉의 아들'일 뿐인데 그래서 더욱 이상하다는 의아심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말씀'은 기존의(구약 성경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다 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해석의 권위를 가지고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의 말씀을 모두 함께 다 아울러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리서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성령의 보내심과 성령의 역할이 대두되어 집니다. [교리서
243 당신 파스카 전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파라클리토’(보호자)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알려 주신다. 창조 때부터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전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이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그들 안에 계시면서,그들을 이끌어 “모든 진리를”(요한 16,13) 깨닫도록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기다림과 깨어있슴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리서
672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메시아 왕국이 영광스럽게 세워질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음을 밝히셨다. 예언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결정적인 질서를 가져다 줄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지금은 성령과 증거의 때이지만, 또한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마지막 때의 싸움이 시작되는 “재난”과 악의 시련으로 얼룩진 시기이기도 하다.이 시기는 기다림과 깨어 있음의 시기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기다림과 깨어있슴은 가짜 마리아의 거짓된 메시지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주님이신 성령의 활동에 근간을 둡니다. 주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지만 이에 대한 악의 반격으로써 '가짜 마리아'가 나타나 있습니다.
 
가짜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꿉니다. 참된 마리아 성모님이시라면 예수님의 말씀(하느님의 말씀)을 바꾸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 마리아 탕녀는 여신(대바빌론)으로 행세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바꾸어 말합니다. 창세기 때 뱀의 유혹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교리서
687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1). 하느님을 계시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분이” 우리에게 성부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신앙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성령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진리의 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 참으로 하느님다운 이러한 숨김은,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요한 14,17)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아는 것은 그분께서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가짜 마리아는 드러내 보이려려고 애쓰지만 주님이신 성령께서는 그 반대입니다. 이것으로 뱀의 출현이 창세기 때처럼 지금도 그 "옛 뱀"이 다시 출현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주 묻습니다. 왜 창세기 때에 뱀이 출현했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가짜 마리아가 출현한다고 따지고 있을까요. 창세기 때도 뱀이 갑자기 출현한다고 뱀의 출현을 따질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인간은 가짜 마리아 대탕녀(여신 - 대바빌론)가 출현했다고 따지지 않습니다. 이는 우상숭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도 존경하지 않는 고향 집안 사람들 성령께서 오셨다고 존경할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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