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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경리와 박완서의 노년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7 조회수594 추천수7 반대(0) 신고

박경리와 박완서의 노년 

소설가 박경리씨는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다음은 노년의 박완서씨가 썼던 글입니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 . .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두 분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조용한 시골집에서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던 분들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지요.
가장 아름다운 인생(上善)은 물처럼 
사는 것(若水)이라는 뜻입니다.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 싶습니다. 
위의 두 분은 물처럼 살다 간 대표적인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부쟁(不爭)의 삶을 보여주었고,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에게 과시하려 하거나 
결코 다투려 하지 않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초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장강(長江)의 글을 쓰면서 
그 글 속에서 인생과 사랑을 말했습니다.
 
말년의 두 분은 노년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나이 먹어야 한다고 
아무 말 없이 조용한 몸짓으로 표현했습니다. 
  
박경리씨는 원주의 산골에서 
박완서씨는 구리의 어느 시골 동네에서 
흙을 파고 
나무를 가꾸면서 
빛나는 노년의 침묵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노년의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했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뿐입니다. 
더러는 조금 짧게 살다가, 
더러는 조금 길게 살다가 
우리는 가야 할 곳으로 떠나갑니다. 

두 분의 삶을 바라보면 
이 소중한 시간을 
이해하면서 살라고, 
배려하면서 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을 
지난 날을 돌이키며 후회하기 보다는 
남은 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과 행복을 찾아 보자고 다독여 주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삶에서 배웁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조차 
고마움을 느끼는 일상, 
조그만 일에 끊임없이 감사함을 느끼는 노년, 
그렇게 넉넉한 마음의 행복을 배우게 됩니다.

항상 健康하시고 幸福하세요! 

오늘의 묵상 :

글을 쓴다는 것은 삶에서 묻어나고
살아온 경험을 글로 표현하기에 그 글에 대한
감동과 찡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박완서 작가의 표현 중에,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성경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것은
그 안의 내용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겪고 있는 일,
그리고 인간의 참 삶을 하느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인간의 솜씨로 글을 썼다고 믿어지지 않기에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일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지만 절명의 순간에 "야훼 이레" : '하느님께서 다 마련
하셨다고' 하시면서 이사악을 살려주시지만,

신약에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만인의 죄를 씻겨주려고
희생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26,38-39)

제 기억으로 박완서씨에게 무참한 시련을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외아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출발하려는
순간에 교통사고로 하느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이때 절규하시면서 십자고상을 내던지면서
내게 이런 하느님이시라면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면서 내가 집어 던질 수 있었던
예수님이 계셨기에 분풀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서 회심의 기회를
가지셨답니다.

내면의 아픔과 진통이 있었기에 승화의 꽃으로 소설을 그리고
많은 글을 쓸 수있었으며 글의 내용이 삶이 묻어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10,13)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2코린1,6)

오늘 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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