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옷자락과 장터 [아래로부터의 영성 3]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1 조회수36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


예수님을 알아 봅니다. 병든 이들을 그분께 데려옵니다.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과연,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있을까요. 병든 이들은 우리 모두 각각 자기 자신들이기도 합니다. 누가 우리를 예수님께 데려다 줄까요. 예수님을 알아 본다는 것은, 머리에 든 지식으로 안다는 것에 결코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리로 알아 보는 것은 분명하게 마음으로 알아 본다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기술적으로 노래를 잘 하는 것과 마음의 심정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감동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나를 예수님께 데려다 주는 사람이 없다면 자기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가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은 쉽게 그분 곁으로 다가가기는 힘들다 싶습니다. 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예수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 사람 마음에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분과 소통한다면 그분을 알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상대방과 소통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과 어떻게 소통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흔히 기도에 의지하면 된다 하고 말하기 쉬울 것같습니다. 물론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자칫 자기 생각의 기도를 함으로써 '그분과 대화한다'고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상대방의 마음과 자기 마음의 일치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상대방의 말에 그 일치의 길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 상대방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가르침) 하고는 달리 자기 생각의 기도로 그분께 달려간다면 예수님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데려가는게 아닌 것입니다. 기도의 기술일까요. 아니면 머리의 기도일까요. 그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그분은 멀리 계시기만 하실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분께 자기 자신을 데려가지 못합니다. 어느 분이 예수님이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목소리(말씀)을 알아 듣습니다. 가짜 마리아와 거짓된 메시지를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 10, 3 - 5)

가짜 마리아에게 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지 못합니다. 가짜 마리아와 일치된 사람은 예수님과 일치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라, 탕녀의 지체입니다. 탕녀는 대바빌론입니다. '대바빌론'은 구약의 예언자들에게서 이미 경고되어져 온 '여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아 보는 양들은 결코 낯선 가짜 마리아를 따르지 않습니다. 낯선 가짜 마리아의 목소리(거짓된 메시지)를 분별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목소리(말씀)로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거짓된 강의와 출판물 등도 분별해 냅니다. 그것들은 모두 '말'이기에 그러합니다.

성령을 부정하는 사람은 어떻게 평신도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성령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하여지고 깨닫게 되어진 것입니다. 성령의 주님보다 가짜 마리아에게 사로잡혔으니 성령의 활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 것입니다.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가난한 사람의 장터에서 만질 수 있습니다.

성전도 아니며, 높은 자리에서도 아닙니다.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낮은 곳입니다. 머리로 하는 위로부터의 영성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려는 체험적인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말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