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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1 조회수698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Whatever villages or towns or countryside he entered,
they lai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and begged him that they might touch
only the tassel on his cloak;
and as many as touched it were healed.
(Mk.6,56)

 
제1독서 창세 1,1-19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


 
복음 마르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어떤 분이 제게 갑곶성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또한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멋진 곳이라는 말씀도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있을 때에는 갑곶성지가 멋있다는 생각도 또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고단한 곳, 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곳이라는 생각뿐이었지요.

아름다운 곳에 사는 사람이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말하지요.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사람들이 좋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갑곶성지이지만, 이 안에 계속 살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을 깨달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곶성지를 떠나 복잡한 도시 안에서 사목을 하다 보니,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좋은 곳에서 생활했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디를 여행가서 그 장소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행 중이니까, 그러니까 며칠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더 큰 것입니다. 만약 그 장소에서 30년을 산다면 그 아름답다는 장소에서 늘 그렇게 큰 감동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지금의 내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나의 자리보다는 남의 자리에, 내 것보다는 남의 것에 더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삶 안에서 감동을 얻지 못하지요. 지금의 자리에서 커다란 안테나를 세워 내가 누리는 행복을 깨닫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특별한 존경과 사랑을 표시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 앞으로 데려오지요. 또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까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굳은 믿음을 갖췄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 모두 치유의 기적을, 즉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마을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우리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알아보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표시하고 있을까요?

이천년 전 당시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이천년 전처럼 직접 예수님 스스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이제 시공간을 뛰어넘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되었지요.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나의 일상 삶 안에서 느끼십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삶을 떠올려 보십시오. 과연 나 혼자서 다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주님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주님의 사랑이 내 곁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지 않고, 순간을 기억한다. 삶의 풍요로움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파베세).



갑곶성지의 야외 십자가



지혜로운 사람의 선택

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목이 말랐지요. 그러던 차에 저 앞에 있는 자그마한 우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한걸음에 뛰어가서 우물물을 마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 옆에는 물을 떠서 마실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우물 옆에 떠 마실 수 있는 도구 하나 없다고 매우 화를 내면서 물을 찾아서 떠났지요.

잠시 뒤, 또 다른 사람이 이 작은 우물을 찾아왔습니다. 이 역시도 너무나도 목이 말랐지요. 그런데 이 우물 옆에 떠 마실만한 도구가 없음을 알게 되었지요. 이 순간 이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또 화를 내면서 우물을 떠났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물을 떠 마셨습니다.

방법은 있었습니다. 앞선 그 나그네 역시도 화를 내는 것을 조금만 참고 생각했더라면 이 나그네처럼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화내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착하게 생각할 때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먼저 화를 내는 길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까지도 주면서 상태를 더욱 더 나쁘게 만들어 버립니다.

화를 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화를 참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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