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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12일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2 조회수37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년2월12일 화요일 복음묵상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마르코7,1-2)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마르코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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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은 것은 당연히 비위생적이다. 유치원 아이들도 아는 이야기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께 시비를 가리자 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라는 말에 눈이 멈춘다.
이른바 율법에 관해서는 그 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이 고작 시비거리로 내놓은 것이 손을 닦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한 논쟁이었다.
갑자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한심한 작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
인류 역사의 용서받지 못할 폭력은 배웠다는 자들에게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무식한 독재자나 폭군 뒤에는 진리나 진실이 아닌 교활하고 어설픈 논리를 나열하기 좋아하는
배웠다는 인간들이 있어왔다.

학자의 양심이라는 말이 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용기를 말한다.
사심이나 개인의 욕망을 배제하고 옳음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행동을 말한다.
어쩌면 학자의 양심이란 학자 이전의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방어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오늘 예수님께 보인 태도는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조짐을 예수의 생각과 행동에서 본 것이다.
문제는 소외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동요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 면학을 강조하는 세상은,
부와 명예를 손에 넣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면학은 학자의 양심을 만들 수 없다.

갈수록 심해져 가는 자녀들에 대한 어긋난 교육열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과연 그런 교육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참된 배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진리와 진실에 다가가는 배움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진실을 죽이는 배움이 아니라, 살리는 배움이었으면 한다.
분열과 소외를 만들어내는 지식이 아니라 화합과 나눔을 가능케 하는 수용의 지식이었으면 한다.

세상이 너무 거칠어져 가는 느낌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거친 세상에 일조하고 있지 않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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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아프다.
나쁜 이들의 폭력 때문이 아니라, 좋은 이들의 침묵 때문이다.” – 나폴레옹 –

(나폴레옹의 말이라 어울리지는 않지만, 말 내용은 그럴 듯 해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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