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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누구인가? -하느님의 모상- 2013.2.12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2 조회수35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2.12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창세1,20-2,4ㄱ 마르7,1-13

 

 

 

 

 


사람은 누구인가?

 

-하느님의 모상-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사람이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하느님 없이는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신비는 바로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인가?

평생 물어야 하는 화두입니다.

하느님을 찾으며 '참 나'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느님 탐구과정과 참 나의 탐구과정은 함께 갑니다.

그러니 평생공부가 하느님 공부입니다.

 

 

 


첫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해야 하느님을 알고 참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창세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속 시원히 밝혀 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특별히 창조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사람의 창조가 유별납니다.

온갖 피조물은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지만

사람만은 유독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창조된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 인간의 존엄한 품위의 근거가 있습니다.

피조물에 지배되지 않고

당신의 관리인으로 사랑으로 다스리라 창조된 책임적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나의 실현도 사랑을 통해 주님을 닮아감으로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은총이자 과제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태어난 은총의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참 나의 완성은 평생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여 이에 맞갖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 말도 있듯이 말 그대로 준비된 하느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지만

아주 서서히 질서 있게 혼돈에서 살만한 곳으로 마련하신 후

사람을 창조하신 섬세한 하느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준비하여 마련하신 후 비로소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인내와 기다림을 배워야 하고

더불어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여 그에 맞갖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참 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도 장구한 시간이 걸립니다.

봄, 여름, 가을의 인내와 기다림 중에 익어가는 열매이듯

참 나의 성숙과정도 똑같습니다.

하느님께는 첩경의 지름길이나 비약이나 도약이 없습니다.

 

 

 


셋째, 일과 쉼의 리듬을 배워야 합니다.

 

참 나의 성장과 성숙에

기도와 노동, 관상적 쉼과 일의 리듬이 균형과 조화는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은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복되고 거룩한 관상적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느 대선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 크나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런 관상적 쉼의 욕구를 반영합니다.

 

사람은 결코 기계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일과 관상적 쉼의 리듬에서만이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서의 참 나의 실현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승들이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시간 역시 일종의 관상적 쉼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시간 낭비의 관상적 쉼이 영육을 충전시켜

충만한 '참 나'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오늘 화답송 후렴처럼, 눈만 열리면 온 세상이 하느님 사랑의 현현입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하느님의 눈은 사랑의 눈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닮아갈 때 올바른 분별입니다.

나무의 부분만 보는 게 아니라 숲의 전부도 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봅니다.

사람의 전통만 있고 하느님은, 하느님의 계명은, 사람은 실종입니다.

완전히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삶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눈으로 나무와 동시에 숲을 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들의 무지와 편견을 개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분별의 잣대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뜻에 따른 올바른 분별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참 나'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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