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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은 보는 것과 하나가 되어간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2 조회수774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재의 수요일


<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복음: 마태오 6,1-6.16-18






수산나와 두 노인


렘브란트 작, (1647), 베를린 국립박물관


     < 사람은 보는 것과 하나가 되어간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 벽화를 그릴 때의 일화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작품 최후의 만찬을 작업하는 동안 한 가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묘사하던 중 선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악을 대신하는 유다의 얼굴을 어떻게 묘사해야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버린 거지요.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작업하는 틈틈이 선과 악, 그 두 얼굴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성가대에서 목소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남성 성가대원을 발견하곤 환호했습니다. 그는 외모적으로 그리스도를 대변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가 젊고, 건강하고, 활기찼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청년을 자신의 화실에 초대하였고 그를 모델로 삼아 그렸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최후의 만찬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흐르는데 레오나르도는 한 가지 문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악을 나타내는 유다의 얼굴을 가진 모델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단지 유다만 제외하곤. 교회의 건물주는 이 미술작품을 속히 마무리하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거리를 다니며 작품 속의 유다의 얼굴을 떠올리며 모델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몇날 며칠을 고생한 후, 레오나르도는 참 슬프고, 외롭고, 술에 취해 있고, 현세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 사는 듯한 한 젊은이를 찾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를 자신의 화실로 초대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가는 이 젊은 주정뱅이의 모습에서 이기주의를, 악을, 옹졸함을, 죄와 모든 타락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 젊은이가 그 작품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 이 그림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는데!” 레오나르도는 너무나 놀라서 젊은이에게 언제 이 그림을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3년 전에요.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잃기 전에요. 그땐 전 성가대에서 아름다운 성가를 불렀어요. 꿈도 많았었지요. 어느 화가 분이 저를 초대해 예수님 얼굴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었어요.” 그렇습니다. 이 젊은이는 예수님의 얼굴과 유다의 얼굴, 즉 두 얼굴의 주인공인 것이죠.

[퍼옴: 다음카페, 마니피캇오르간반주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사람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보고 배운다면 그렇게 사람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아기들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한 아기는 10개월이 되었는데도 일어서기는커녕 배밀이도 못하고 뒤집지도 못해서 어머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와 같은 또래 아기들을 가진 어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어머니가 아기들을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단 며칠 만에 이 아기가 갑자기 배밀이를 하고 일어서서 걷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기가 그것을 할 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배우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한국 남자들은 무뚝뚝하고 대화를 잘 못합니다. 그저 맞장구만 쳐줘도 되는데, 그런 닭살 돋는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본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를 구타하는 아버지가 너무 싫었지만, 결국 결혼해서 아내를 구타하는 남자도 보았습니다. 본 것이 결국 자기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루 종일 폭력적인 오락만 하는 사람이 그 폭력성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TV프로에서 전쟁게임을 매일 하루 종일 하는 여자 청년이 나왔는데 행동 자체가 그 게임에 나오는 사람과 같았고 실제로도 복장을 군인처럼 하고 다니며 음료수 캔을 수류탄으로 생각하고 던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고 그래서 많이 보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나와 하나가 되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이나, 기도, 자선 등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려고 무슨 일을 하던가,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서 어떤 일이나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내면에 집중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외적인 것이 집중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외적인 것이란 우리 육체를 의미하고 또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육체와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져버리는 것들입니다. 사람이 외적인 것들에 집중해서 살면 그 사람 또한 그 외적인 것들과 하나 되어 나중에는 함께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불을 좋아하는 나방들이 불과 하나 되어 타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내면 안에 계신 하느님께 집중한다면 자신도 하느님의 영원성과 하나 되어갑니다. 왜냐하면 관심가지고 보려고 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집중하면 사랑이 되고, 세상에 집중하면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사랑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백화점을 가면 층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를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위로 올라가고, 언제 밑으로 내려갑니까? 위층에 우리 관심거리가 있으면 위로 올라가는 것을 타게 되고, 밑에 관심거리가 있으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타게 됩니다. 육체에 관심이 있으면 육적인 인간으로 내려가게 되고, 영에 관심이 있으면 나는 영적인 인간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구약에 나오는 수산나와 두 노인에 관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노인은 수산나가 목욕하는 것을 매일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주 보다가 보니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계획하게 되고, 결국 아무도 없을 때 수산나를 겁탈하려고 합니다. 물론 성공하지 못하고 다니엘에 의해 자신들의 생명을 잃게 됩니다. 육체의 욕망에 관심을 가졌기에 언젠간 사라질 육체와 함께 죽는 운명의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이렇게 육체에 씨를 뿌리면 육체와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와가 뱀을 보았기에 뱀처럼 되었습니다. 만약 하느님을 보았으면 하느님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바오로도 지금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나중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보게 될 때는 그리스도처럼 되리라고 말합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제 내면으로 들어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것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생명은 밖에 있지 않고 나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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