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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5 조회수800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15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Can the wedding guests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Mt.9,15)

 
제1독서 이사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복음 마태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전에 간발의 차이로 전철을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차 시간을 보니까 10분 뒤에 온다고 되어 있더군요. 순간의 차이로 10분을 쓸데없이 소비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났습니다. 길에서 조금만 속도를 냈더라면, 내게 길을 물어본 그 아주머니만 없었더라면, 에스컬레이터에서 길을 내주지 않아 서서 올라가는 시간만 줄였더라면.... 계속해서 전철 놓친 것에 대한 생각, 그리고 10분이나 허비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 천천히 플랫폼 끝까지 걸었습니다. 그런데 플랫폼 끝에 두 개의 화분이 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이 끝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없기에 굳이 이곳에 화분을 두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뜻밖의 자리에 예쁜 꽃을 담고 있는 화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바로 이 순간, 만약 전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이 꽃 화분을 볼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10분의 시간이 내게 뜻밖의 미소를 간직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 세상에 쓸모없는 시간과 일과 물건은 절대로 없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지요.

순간의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느리게 걸었던 내 발에 그리고 내게 길을 물어 본 아주머니가 또 에스컬레이터에서 길을 내주지 않았던 분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전해 갈수록 우리는 세상을 온통 쓸모 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망가지면 버리고, 실용성이 떨어지면 금방 대체시키고, 빈 곳은 어떡하든 채우는 식의 사고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생활 속의 여유마저 ‘쓸모 있는 여유’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쓸모없다는 시간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며, 아깝다는 시간이 나의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종종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을 봅니다. 그래서 여유가 되면 성당에 나가겠다고, 지금의 바쁜 것만 다 끝나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가는 것,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찾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 뜻을 찾지 못한다면,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언제 단식해야 할지, 그리고 언제 웃고 즐겨야 할지 모르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깃들여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마음을 두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 주님의 뜻을 찾는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사랑할 때 경험하는 감정은 정상 상태에서 나온 감정일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때 자기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안톤 체호프).



지금 어려움 속에 있는 콜트 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미사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호기심

제 조카 중에서 한 명은 어렸을 때 아주 독특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어떤 차를 봐도 그 차종을 다 맞추는 것입니다. 물론 차의 상표가 붙어있는 뒤쪽이 아니라, 앞이나 옆을 봐도 그 차가 어떤 차라고 척척 맞추는 것이었지요.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이에게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냥 알아요. 저는 자동차가 좋거든요.”

좋아하면 당연히 호기심을 갖게 되고, 호기심을 가지면 어떻게든 파헤쳐서 알아내고 싶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차의 한 부분만을 봐도 어떤 차라는 것을 척척 맞출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기억이란 호기심이 왕성할 때 더욱 더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와 달리 어른들은 이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지요. 작은 것에도 감동하지 못하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또 별 것이 아니라는 듯이 취급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새로운 자극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또한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호기심은 우리가 죽기 전까지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들에게 직접 환하게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시원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라고 계속해서 과제를 주고 계신 것이지요.

주님께 대한 호기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만의 기준으로 그 호기심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더욱 더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의 보다 기억력이 훨씬 더 좋아지는 것은 물론 주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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