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고기의 맛 그리고 단식 [아래로부터의 영성 4]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5 조회수377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오 9,14 - 15>

*******************************************************


요한의 제자들이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며 예수님께 다그칩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고행을 많이 한다고 은근히 자기네 자랑을 합니다.그러면서 자신들에게서 배우라고 넌지시 의인임을 내세웁니다.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다음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요한 3,25 - 26 참조) 이처럼 요한의 제자들은 속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정도에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요한의 제자들'도 정결례와 단식 등의 외형에 치중하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지금 단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시기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속 모습보다 겉 모습으로 다투려는 욕정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성 요한께서는 고행에 대하여 이렇게 전합니다. "순명이 없는 고행은 짐승들의 고행일 따름이다. 거기서 얻는 맛과 탐욕에 움직이는 사람은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고 말합니다. 거기서 얻는 맛과 탐욕이란 '순명이 없는 고행에서 얻는 맛과 감흥적 탐욕'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행동주의를 가리킵니다. 

고행이라고 하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고행의 맛'을 즐기는 것인데 이는 짐승들이 고기의 맛을 알고 고기를 찾아가듯이, 고행의 맛을 즐기려고 고행을 찾아다닌다는 뜻입니다. 순명이 없는 고행은 올바른 고행이 아니다는 것을 성 요한께서는 설명한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단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식도 '고행'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식이 잘못된 단식일까요. 십자가 성 요한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순명이 없는 고행 곧 '순명이 없는 단식'은 단지 고기의 맛에 감흥을 즐기려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기의 맛을 즐기려고 고기를 찾아 다니는 짐승과 같이 단식하는 고행의 맛을 즐기려고 단식하는 고행의 감흥에 빠지는 것입니다.

행동의 감흥에 빠지는 행동주의자들은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지 않으면 제 몸이 건질거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무언가를 명분으로 내세워 행동을 함으로써 긴장상태에 빠져 들어가야만 합니다. 흔히, 데모(시위)에 미친 이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집단 행동을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그 속에 빠져야만 합니다.

여기에서도 '위로부터의 영성'과 '아래로부터의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하여 단식하는 수덕적인 행동이 순명의 단식 행동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이 바로 '나 홀로 수덕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의 말씀에는 순명하지 않고 오직 단식이라는 수덕의 맛을 즐기려는 것뿐입니다. 

수덕의 맛을 즐기며 수덕의 감흥에 빠져서 수덕의 탐욕에 찌들린 사람은 자선과 단식과 기도 등에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형에 치중합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고 고행의 맛을 찾아 다닙니다. <보잘것 없는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순명)하기 보다는 온갖 천상의 덕을 입으려고 고행의 맛을 탐합니다

<보잘것 없는...해 준 것이다>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저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멸시하면서도 위로부터 오는 온갖 천상의 덕(사랑 등)을 취하고자 하는 '위로부터의 영성'은 성전 중심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과 같이 위선에 불과할 뿐입니다. 속을 깨끗히 하면 겉도 깨끗하게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고기의 맛'을 알고 고기를 찾아 다니는 동물과 같이 '수덕의 맛'을 알고 수덕을 찾아 다니는 불순종(불순명)자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즉, 예수님을 따르기 보다는 위로부터 오는 천상적인 수덕의 맛(고행의 맛)에 탐욕을 지니고 있는 탓인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해 준 것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에는 따르지 않으면서도 천상에서 오는 '사랑의 덕'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 '탐욕자'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는 상관없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섬기는 '나 홀로 수덕주의'에서는 인간을 중시할 수 없게 됩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올바른 단식(수덕)의 행동을 마땅히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는 수덕하는 자신의 노력(능력)에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그분에게서 오는 은총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와의 일치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