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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15일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5 조회수38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년2월15일 금요일 복음묵상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오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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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문화권의 나라들은 삶을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나누어서 표현했다.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다.
모두가 필요한 마음의 움직임들이다. 기쁨과 즐거움만을 가지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분노와 슬픔만을 가지고 살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우리네의 삶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만 있는 세상, 혹은 분노와 슬픔만 있는 세상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이 네 가지의 감정을 갔고 살다가 갈 것이다.
기호에 맞는 감정만을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유명한 외국 스님의 ‘화’라는 책이 몇 년 전에 여러 나라에서 읽혀져 화제가 된 것을 기억한다.
화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야기와 방법에 대하여 설득력 있게 쓴 글을 공감하면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좀 달랐다. 결국 세상의 아픔과 부조리에는 거리를 두고
홀로 득도라도 하라는 소승적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노할 것에는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기 때문이다.

복음적인 것의 특징들 중의 하나는 공감이다.
이 공감 안에서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해야만 한다.
물론 여기서의 공감은 옳은 공감이어야만 한다. 이럴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답다는 말을 듣는다.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고,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느끼며,
즐거워해야 할 때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보면,
이리도 당연한 일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공감의 세계보다는 이질감의 세계에서 사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예수님께서도 이 네 가지의 감정 안에서 삶을 사셨고 복음을 전하셨다.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기쁨을 표현하셨고, 성전을 장사 소굴로 만든 이들에게 분노를 보이셨으며,
라자로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순수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기쁨을 표현하셨다.

혼인 잔치에서 곡을 한다면, 이유야 어떻든 그것은 병든 가슴을 가진 이다.
초상집에서 기뻐 춤을 춘다면, 이유야 어떻든 그것은 병든 가슴을 가진 이다.

언제나 우리의 삶의 위치는 희로애락의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이유로 그 자리에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 느낌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옳은 이유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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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에 어울리는 글과 그림이 있어 퍼왔습니다. 출처는 모릅니다)

스페인의 한 투우장에서 한 투우사가 수 많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소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소의 공격을 피하며, 소의 등에 칼을 꽂던 투우사. 이제 마지막 회심의 일격만이 남아 있다.
그 순간, 공격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소. 마치 살려달라는 듯,
싸우지 말자는 듯 하는 소의 눈을 바라본 투우사는 마지막 일격을 망설인다.
한참을 망설이던 투우사는 결국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만다.
그리고 투우사는 경기장 밖에서 또 다른 싸움을 벌인다. 바로 투우를 반대하는 싸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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