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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6 조회수554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16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to repentance but sinners.
(Lk.5,32)


 
제1독서 이사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루카 5,27-32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제가 꼭 피하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되는 것입니다. 바쁘게 일처리를 한 만큼 제대로 일이 돌아갈 리도 없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여유를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사순절 특강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강의 준비에 대한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저녁 역시 모임이 있었지만, 이 시간에 강의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또 굳이 이 모임에 제가 참석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초조하게 산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단지 불안감만 생길 뿐이지요) 모임에 참석했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우리들이 많이 쓰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이 말의 다른 뜻은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나 의무와 목표와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다 보니,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세상을 만날 시간이 없었던 것이지요. 즉, 나의 시간들을 남의 것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들을 나의 것으로 되찾아오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내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바쁘고 여유가 없는 것 같았지만, 모임에 참석함으로 인해 오히려 여유를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쾌한 시간으로 인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바빠!’라는 말을 내 삶의 금지어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요? 남을 위한 시간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을 살 때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복음의 내용을 기초로 약 3년의 시간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기에는 참 적은 시간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매스미디어가 발달되어 있던 시대도 아니었기에,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에 시간이 형편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레위라는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면서 잔치에 참여하시지요. 이 모습이 하느님의 일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요? 이럴 시간에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점이 못마땅했습니다. 의인들과 함께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오히려 죄인들과 먹고 마시고 있으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진정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랑보다는 미움을 간직하고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운 일에는 초급이 없다(릴케).



이런 쪽지를 받았습니다. 행복한 결혼이 되시길~~~



철저하고 완벽한 계획

‘무능한 도둑은 금고만 보지만, 유능한 도둑은 퇴로부터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이 훔칠 금고만 바라보고서 쫓아간다면 그 금고를 만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잘못하다가는 만지지도 못하고 잡힐 지도 모릅니다) 그 금고를 털고 나가는 순간 금방 잡힐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 말은 ‘도둑은 이렇게 하라!’는 지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 한 순간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훗날의 안정까지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알프스 산을 정복하는 산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상을 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철저히 하는 것이 하산에 대한 준비라고 합니다.

이처럼 완벽한 계획은 눈앞의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먼 훗날의 안정까지 염두에 둔 계획만이 빈틈이 보이지 않는 철저한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일에만 관심을 두고, 세상 안에서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먼 훗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냥 대충 살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에 대충 집어넣어 주실까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참된 성공을 위한 철저하고 완벽한 계획을 이 사순시기에 세워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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