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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일 - Passive[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6 조회수388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스스로 광야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모셨다~’

여러분들도 성령께서 내몰아서 이곳에 불러주심을 믿습니다.

아멘

 

오늘 복음에는 중요한 단어, 네 개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광야

두 번째가 사십일

세 번째가 회개

네 번째가 복음을 믿어라~

이 네 가지가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첫 번째, 광야

광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 광야의 의미는 유혹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전갈이나 들짐승 밖에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사막이라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영하로 내려갑니다.

약한 인간의 몸이 견디기 어려운 장소가 광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괴로운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유대인은 사십년을 광야를 헤매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하느님이 어디 있냐며 외쳤지요.

하느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사십년이나 뺑뺑이를 돌리겠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배고프다고 난리를 칠 때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광야라고 하는 것은 유혹의 장소이며 또한 시련의 장소입니다.

 

두 번째, 광야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은총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사람이 살기 힘든 그 척박한 땅에 세계의 유명한 수도원이 다 있습니다.

성인, 성녀가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살던 곳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인간의 몸이 견디기 어려운 장소이지만

그 장소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머무느냐에 따라

다른 어느 곳보다도 하느님과 인간이 쉽게 만나는 장소입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분심덩어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면 오로지 하느님만 보입니다.

 

우리의 몸이 광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집이 은총의 장소가 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성당이 은총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레지오 쁘레시디움이 은총의 장소가 될 수 있고

반모임이 은총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장소에 있어야 되느냐!

그곳은 바로 유혹의 장소로 변할 겁니다.

은총의 장소냐~ 유혹의 장소냐~ 하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인간은 끊임없이 은총과 유혹을 왔다~ 갔다~ 합니다.

광야는 은총의 장소이며 수동의 장소입니다.

세상에서는 움직여야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만

광야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수동(passive)의 장소입니다.

 

 

하느님은 수동의 상태가 되어 있을 때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배티성지도 시즌 때는 수많은 사람이 복작거리는 능동의 장소이지만

이렇게 한겨울에는 영적 재충전을 하는 수동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우리들은 패시브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공생활을 하셨고, 18시간 동안 당함의 때를 받으셨습니다.

잡혀 가시면서부터, 매 맞으심, 침 뱉으심, 가시관 쓰심

모든 것이 당함이지~

당신이 원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는 18시간!

잡혀서 돌아가실 때까지 18시간!

 

3년 동안 공생활도 구원의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18시간도 분명히 구원의 역사의 한 순간이었습니다.

 

광야는 능동의 장소가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끌려감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은수자들이 지금도 광야로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나름의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지에서 혼자 이틀이고 3일이고 머물면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납니다.

영적으로 재충전이 되면 ‘그래, 세상에 나가 한 번 싸워보는 거야!’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광야는 깊은 뜻이 있는 곳입니다.

 

두 번째는 사십일

성서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십이라고 하는 숫자는 노아의 방주이야기에서 나옵니다.

하도 인간들이 못되게 구니까 하느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여 방주를 만들게 합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 때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미친놈, 아니 배를 산위에서 만들어~ 바닷가에서 만들어야지’

 

배티는 산위에 있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200여 년 전에 천주님을 지키기 위해 이 산속에 교우들이 숨어듭니다.

논답, 전답 다 버리고 호적을 파헤쳐지면서까지 이곳을 찾아들 때 사람들은

‘미친놈들, 왜 벼슬을 버리고 가!’

그래서 여기는 노아의 방주입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십이라고 하는 뜻은 첫 번째 심판입니다.

사십 주야를 비를 내렸다고 나와 있지요?

심판을 통하여 정화를 시킵니다. 그리고 구원을 시킵니다.

물이 다 빠지고 난 다음에 하느님이 정하신 모든 동물 한 쌍이

노아의 방주의 문이 열리면서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십의 뜻은 심판과 정화를 통하여 새로운 부활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성서에 사십이라고 사는 숫자는 모세를 통하여 등장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모세는 시나이산꼭대기에서 사십일 동안을 단식과 기도를 합니다. 모세는 꽃반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것도 아니요,

편안하게 TV 보면서 하느님 만난 것이 아닙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배고픔의 고통을 맛보면서 사십일 동안 기를 쓰고

‘내가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그분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못 내려 간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지요?

‘나는 야훼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다!’

그러면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나타난 사십일의 두 번째 뜻은 은총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봅니다.

모세는 사십일 동안, 죽을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애를 썼지요.

은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은 은총을 폭포수처럼 내려주어도 모릅니다.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해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어, 어~ ’ 하다 보면 부활절도 멀지 않습니다.

‘내가 사십일 동안 뭐하고 살았나~ 아무런 준비 없이...... ’

 

브라질에 가면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며칠 동안 카니발 축제로 광란의 밤을 보냅니다.

왜 그런 축제가 있습니까?

사십일이 되면 근신을 해야 되니까~

그러나 그 인간들은 일년내내 그러고 삽니다.

사순절이 육십 번, 칠십 번이 찾아와도~

사순절을 한 번도 올바로 지내지 못하고 죽는 인간이 있습니다.

 

일년내내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이 은총을 받기위한 준비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매시간 매시간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사십일의 세 번째 등장은 오늘 복음대로 예수님이 사십일 동안 광야에서

모세처럼 사십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보냈습니다.

천국에서 대천사였던 마귀의 두목인 루치펠과의 싸움이 광야에서 붙습니다.

“너 배고프지? 저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봐!”

예수님은 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유혹이 어려운 거예요.

 

차라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안 쳐다봅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참는 것~

내가 손만 뻗으면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유혹입니다.

 

대통령 되고 싶은 유혹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동네 통장, 이장 군의원, 시의원...... 되고 싶은 유혹은 받을 수 있습니다.

 

나하고 상관없는 것은 유혹도 아니에요.

눈만 찔끔 감으면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

마귀는 항상 그런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지요.

두 번 째, 사십일의 의미는 유혹과 시련입니다.

 

세 번째 회개

‘회개해 주실까요?’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 아니라

‘회개하라!’

명령형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회개 하여라!’

 

모든 회개의 첫 번째 내용은 ‘우상숭배에 빠지지 마라!’

우상숭배의 사전적인 정의는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

그건 전부 다 우상입니다.

 

하루 종일 살면서 일주일 내내 눈만 뜨면 돈, 돈,...... 돈이 우상입니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암....암.... 몸뚱아리가 우상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찾으면 다 해결해 주신다고 했는데~

자식에 대한 걱정, 건강, 내 행복, 일용할 양식......

모든 것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것,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는데

주시는 분은 저 아래 팽개쳐두고 엉뚱한 우상에 빠지고~

 

현대판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닙니다

내 아집 , 알량한 지식, 남보다 똑똑하다는 교만...... 이런 것이 우상이지요.

 

우리는 매일매일 저녁에 잠들기 전, 만과를 바치기 전에

내가 첫째 자리에 하느님을 과연 내가 모시고 살았는가~

하루 종일 분노, 미움을 모시고 살지 않았는가~

회개의 내용 첫 번째가 죽을 때까지 우상숭배에 빠져 사는가~ 입니다.

 

회개의 두 번째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던가!

우리들은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는 변호사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는 얼마나 엄하게 검사 노릇을 하는지 모릅니다.

교만한 인간은 자기 상처만 돌에 새겨놓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눈곱만큼도 기억을 안 합니다.

 

사순절에는 남을 심판하는 그 손가락을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철저히 심판하여 정화하는 시기입니다.

 

네 번째는 복음을 믿어라!

‘복음을 믿어라!’ 고 그랬습니다.

‘복음을 읽어라’ 가 아니라 ‘복음을 외워라’ 가 아니라

‘복음을 해석하라’ 가 아니라 ‘복음을 믿어라!’

‘믿어라~’ 라고 하는 단어는 신앙의 기초단어입니다.

 

복음은 믿는 것이지~ 외우는 게 아닙니다.

복음은 읽어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어라!’ 라고 하는 것은 ‘복음을 체험하라!’

‘복음을 살아라!’ 그 뜻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어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우리가 말씀을 체험했을 때의 그 기쁨은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전에는 암만 보아도 수면제 역할밖에 안 했던 그 성서가

어느 날 삶 가운데에서 체험을 하고 나면 활자가 살아 움직입니다.

칼날이 되어서 내 영혼을 뚫어 버립니다.

묵은 때를 파내고, 구석구석 숨어져 있는

죄악덩어리를 말씀이 깨끗이 청소를 합니다.

‘아 이게 하느님의 말씀이구나!’

‘이게 바고 복음이구나!’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광야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했어요.

유혹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은총의 장소입니다.

 

사십일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했지요?

첫 번째, 노아의 방주에서 물의 심판과 정화를 통해서 새로운 부활!

두 번째,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하여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하느님은 길거리나 시장 통에서 만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기도 안 하면 손해 보지~’ 그런 마음이 아니라

묵주기도 5단을 바치더라도 내 생애 마지막 기도를 바친다는 마음으로 바쳐야

성모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납니다.

 

사십일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악마와 싸우면서 유혹과 시련을 받으신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혹이 많을 겁니다.

평상시에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던 사람이 갑자기 내 적이 될 수도 있고

그것도 먼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서 많은 유혹이 옵니다.

성당 가기 싫어지고, 하느님이 갑자가 안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사기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내적, 외적 유혹이 많을 겁니다.

사순절은 그런 시기입니다.

 

광야, 사십일, 회개, 복음!

이 네 가지를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리면서

사십일 동안 묵상하기를 권고합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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