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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버려지는 것은 - 완전하게 버리다의 과정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7 조회수394 추천수0 반대(0) 신고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루카 4,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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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십자가 삶 속의 십자가 길 [ 버려지다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버리다'와 '버려지다'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측면은 영적인 은총에 힘입어 알게 되어 집니다. 자신의 머리로 인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는 설명입니다. 모름지기 '버려짐'은 완전한 버림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알 수 없고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며 더러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신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라라' 하시는 바를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이라 함은 육적인 지식에서가 아니고 경험에서의 영적이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 '버려짐'은 '완전한 버림'의 과정이다 ]에서 미리 인식되어 있는 기초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기 버림'의 수덕을 행합니다. 자신의 노력을 앞세웁니다.허나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의 힘'에 의하지 않고서는 '자기 버림'은 허수고가 되어지고 맙니다. 자신의 '나 홀로 수덕'은 경험을 거치지 않는 머리로 하고자 하는 고행 곧 '위로부터의 영성'입니다.

이같은 수덕의 방법은 <수덕의 모양은 있지만 수덕을 한 것은 없다>와 같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형의 모습에 치중하고 실상 내면의 모습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버리려는 수덕의 힘은 자기가 버려지는 은총의 힘>을 충분히 깨닫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외형을 중시하며 자신을 섬기고 있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신을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섬기게 되어 질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려고 하는 '위로부터의 영성'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천상의 덕'을 결코 지닐 수 없게 되고 마침내 외형에 치중하면서 자신을 섬긴 탓에 추락해 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버려졌습니다. 이는 그분에게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아닙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몇몇 분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우둔함을 전하여 주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마태오)]

하느님의 계획에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자신을 섬기는 사람은 이와같은 버려짐에 대하여 영적인 소경에 불과합니다. 버려짐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계획)을 완전하게 이루는 완전한 버림
이 됩니다.군중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서 조롱을 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동정을 받지 못하고 처참하게 버려졌다며 주장하는 분들은 이 군중들과 가히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를 버리려는 '위로부터의 영성'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버려지심'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십자가의 예수님에게서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곧 ㅡ 최후의 증언 ㅡ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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