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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18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8 조회수683 추천수1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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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 마태25,31-46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걱정되는 복음>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심판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마다 떠오르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부제 때의 일입니다. 미사주례를 하시던 원장 신부님 옆에서 부제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복음이 바로 오늘 ‘양과 염소’ 복음이었습니다.

 

    복음 낭독이 끝나고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시는데, 온 성당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동시에 큰 제스처로 오른손을 펼치시며 “그 날이 오면, 선행을 많이 한 착한 사람들은 오른쪽에” 하는데, 그가 오른쪽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성씨가 ‘양’씨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살아생전 착한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안한 그 나쁜 **들은 왼쪽에!” 하고 왼편을 가리켰는데, 하필 그날따라 왼쪽에 우리 ‘염신부님’이 앉아계셨습니다. 더구나 그 ‘염신부님’은 얼굴도 까무잡잡한데다가, 수염까지 길러 둘도 없는 ‘염소’였습니다.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흑염소가 몸에 좋다고 해서 수도원 뒷마당에서 길렀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큰 개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둘이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개도 개지만 염소도 성격이 만만치 않더군요.

 

    한번은 동물 담당 형제가 개밥을 주려다보니 개밥그릇이 너무 지저분해서, 허리를 굽혀 개밥그릇을 씻고 있었습니다. 바로 뒤쪽에 묶여있던 흑염소 녀석이 자기에게는 신경 안 써준다고 화가 엄청났습니다.

 

    항의표시였는지 염소 특유의 모션, 상체를 한번 번쩍 들어 무게가 실리게 한 다음 날카로운 뿔로 우리 수사님 허리를 내리 찍었습니다. 얼마나 아팠던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쁜 녀석’의 비유 때 드실 정도로 염소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쉽게 분노하고 그 분노를 함부로 표출합니다.

 

    그 결과는 불타는 지옥입니다. 그 다음날 바로 그 흑염소는 흑염소탕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흥분하고, 여차하면 공격하고, 틈만 나면 따져들고, 그러면 내면에 평화가 전혀 없습니다.

 

    소화도 잘 안되고, 신진대사도 원활하지 않습니다. 쉽게 병에 노출됩니다. 마음고생, 몸고생이 끊이지 않습니다. 살아서 벌써 지옥을 겪는 것입니다.

 

    반대로 양들을 보십시오. 웬만해서는 흥분하지 않습니다. 고분고분 순종적이고 차분합니다. 꽤 많은 숫자의 양들을 키우던 사람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염소 한 마리를 도축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길길이 뛰고 난리법석이랍니다.

 

    반대로 양들은 칼이 목에 들어와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답니다. 좀 반항하고, 길길이 뛰고 그래야 도축하는 기분이 느껴지는데, 칼을 가까이 갖다 대도 가만히 있으니, 오히려 섬뜩하고 잡을 마음이 안 생기더랍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을 양 무리로 비유하셨는데, 다 그 까닭이 있습니다. 양처럼 온순하고,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고, 내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에, 최종적으로 하느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의 내면은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평온합니다.

 

    마음이 늘 평화롭습니다. 관계도 편안합니다.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곧 천국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라는 주제의 오늘 복음은 꽤 두려움을 주는 복음입니다. 평소에 교정사목 봉사나 무료급식 봉사에 열심했던 분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계시겠지요.

 

    상선벌악(賞善罰惡)! 천주교 4대 교리 가운데 하나인 상선벌악,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상선벌악의 의미는 이 세상의 삶을 우리가 마칠 때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시고 선하게 살았던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신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너무나 공평하신 처사,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그러나 꼭 이 잣대만을 들이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하느님은 전자계산기 같은 하느님, 엄격한 재판관으로서의 하느님만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별로 그런 봉사활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지금은 또 봉사 좀 하려고 해도 몸도 성치 않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데, 어떡하나, 나는 100% 불붙는 지옥인가?” 하며 두려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절대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은 무한히 자비하신 분, 우리를 향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나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 자체로 행복해하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느님 자비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나,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비록 일이 꼬이고 잘 안 풀려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그간 한번 잘 살아보겠노라고 ‘쌩고생’ 했던 지난 우리 나날을 기쁘게 생각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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