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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서/신앙의 해[9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8 조회수323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림 :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이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바로 ‘당신’이시라니.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지나쳤던 가난한 이들이 예수님 당신이었다고 말씀하신다.
놀라 기절초풍 할 노릇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을 주시고,
우리를 언제나 어루만져 줄 분으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그분을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신세이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는,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당신이라기에.
그래서 옛 수많은 성인들의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일생을 바쳤다는 게 이제 겨우 실감이 난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온전히 가난한 이들에게 일생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주님’을 우리 삶 안에는 모셔야 할 게다.
방방에 십자고상만 있다고 정녕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다.
매일 주님을 부르며 기도한다고 해서 그분과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보다 못한 작은이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 때 비로소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리라. 
 

단순히 가난한 이에게 연민의 정으로 동정을 느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가난한 이들을 섬겨야만 그들이 내가 모시는 ‘주님’이 된다.
우리는 막연히 생각한다.
‘얼마나 계명을 잘 지켰고, 그 많은 헌금을 내었는가를?’
이러한 것을 최후의 심판, 그 기준으로 여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그러한 내용은 없다.
교회에서 누린 그 화려한 지위에 대한 언급도 아예 없다.
다만 이웃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에게 과연 당신이 어떻게 대하듯이 했는지 만 물으신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지를 헤아리시기보다는
우리가 타인을 위해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를 카운터 하신단다.
또 얼마나 이해타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따라서 죄를 짓지 않아 용서를 청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갖는 것 보다는
얼마나 진정한 마음으로 작은이에게 선행을 했는지에 그 가치를 두자.

선행이야말로 악행을 이겨 내고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마음의 초점이
늘 악행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평생 악행과 싸우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 삶이
선을 쌓으려는 의지로 향하기 때문에 어느덧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이어진다.
삶의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악을 피하려는 것보다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에 있음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우리는 다른 이가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을 다른 이에게 해 주어야 할 게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도 있으리라.
우리는 바로 그러한 것을 다른 이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자주 이기적일까?
나에게는 늘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정작 다른 이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걸 배 아파한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리라.
신앙인은 주님의 삶을 닮고 따르는 사람이기에.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행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한 순간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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