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승이의 눈망울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18 조회수715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1주간 화요일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복음: 마태 6,7 - 15






구세주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ev) 작, (1410-1420)

어떤 분이 성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절실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당신은 꼭 들어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저는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세요. 전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을래요. ...”

저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려 하다가도 그 사람이 그것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맡긴 것을 달라는 듯이 청하면, 왠지 기분이 상해서 해 주려던 것이 다시 주기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느님께 대해서는 그런 경우가 없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교인들처럼 말을 많이 하거나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도 당신의 자비가 크게 부각되는 것을 좋아하시지, 우리가 말을 많이 하거나 노력을 많이 해서 은총을 얻어냈다고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은총의 주도권자는 하느님이시지 우리가 이래저래 한다고 해서 그분의 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천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 ‘7번방의 선물’ 중에 잊혀지지 않는 눈빛연기가 있습니다. 바로 바보 용구의 딸인 ‘예승이의 눈빛’입니다.

용구는 큰 범죄의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7번방에 갇히게 됩니다. 그 곳에는 그 교도소의 짱으로 통하는 조폭 밀수범 오달수와 다른 흉악범들이 있었습니다. 용구는 어린이 유괴, 강간, 살인이라는 죄목이 있었기 때문에 오달수에게 사람도 아니라며 심하게 구타를 당합니다. 그러나 본성이 착한 용구는 다른 조직이 오달수를 해하려 할 때 달려들어 용구를 구하고 자신이 대신 상해를 입게 됩니다. 이에 오달수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보답을 하려고 하는데, 용구의 청은 딸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소리 뻥뻥 쳐 놓은 오달수는 어쩔 수 없이, 용구 딸 예승이를 빵 박스에 넣어서 7번방으로 밀반입 합니다. 만약 이것을 들통 나면 7번방에 있는 모두가 커다란 질책을 받을 것도 분명하고 광복절 특사와 같은 것도 불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에 있던 한 명, 다혈질 모범수 신봉식이 간수가 지나갈 때 이 소리를 질러 간수를 부릅니다. 같은 방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설득하고, 말하면 죽는다고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봉식은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특사로 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수가 문 앞에 서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섭니다. 그 때 문 밑에는 예승이가 신봉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봉식이 이 방에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려는 순간, 그 아이는 신봉식의 손을 잡으며 어른들은 가질 수 없는 맑고 애절한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바라봅니다. 이 때 간수는 자기를 왜 불렀느냐고 신봉식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신봉식은 주저하다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맙니다.

“저 ... 저 ... 빵 하나만 더 주세요 ... 흑 흑”

교도관은 “니가 쟝발쟝이냐?”하며 자기 모자 속에 있던 빵을 구겨서 신봉식 입에 처넣습니다.

 

신봉식의 마음을 돌린 것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설득이 아니었습니다. 안 들어주면 안 믿겠다는 으름장도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다만 ‘다 아시잖아요. 아빠가 절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잠시만 아빠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긴 순결한 어린이의 눈망울이 모범수 신봉식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빼놓고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기도의 말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나만의 기도 방법을 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얼마 전에는 한 신부님이 자기 성당에 이상한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한 자매님이 마치 교주처럼 “옜다! 기도 받아라.”라고 하며 기도 할당량이 적힌 쪽지를 나누어 주면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기도를 하고 나중에 그 자매에게 다시 보고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20~30명이 그 한 사람에게 그렇게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신통해도 이건 아닙니다. 기도는 얼마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승이처럼 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깨끗하냐’, 또 ‘얼마나 절실하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말이나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깨끗하고 사랑스러워야 들어주고 싶고, 또 그만큼 애절하면 하느님도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기도를 잘 해서 은총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은총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주인은 그것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맡겨놓은 무엇을 청구하는 것이 청원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위해 기도할 때 먼저 ‘예승이와 같은 눈망울’이 있는지부터 자신을 살펴봅시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