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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0 조회수615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20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No sign will be given it, except the sign of Jonah.
(Lk.11,29)

 
제1독서 요나 3,1-10

 
1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세상이 온통 ‘특별함’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아니 자신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튀어야 산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평범함이 미덕인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요. 온 세상이 특별함과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만약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를 가면 어떨까요? 예전에는 똑같은 옷이 흔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옷을 입었다고 굳이 부끄러워하지도 또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만약 똑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개성이 없는 것처럼 취급되어 너무나도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교복에도 개성을 입히려고 합니다. 바지 폭, 치마나 재킷 길이를 조절해서 어떻게든 서로 다르게 보이려고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특별한 관심을 받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더욱 더 주목받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의 눈을 생각해서 우리는 특별함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특별함은 내 자신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남과 나의 비교, 남의 시선에만 집중하는 내 자신이 어떻게 일상 삶 안에서 평온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습니다. 남과 내가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바쁘고 한가한 일상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고...’의 반복이 아닐까요? 하지만 평범하다고 그냥 시간에 흐름에 나를 맡겨서 살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평범한 일상 안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야 진정한 평화와 기쁨,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땅에 묻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문득 아파트 문을 열고서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소리치며 들어올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답니다.

어떤 새로운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주님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계속해서 특별함만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지칭하시면서, 특별한 표징을 요구하지만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평범한 일상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주님의 사랑이 가장 큰 표징이고 특별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의 눈을 신경 쓰고 관심을 받기 위한 특별함을 추구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매순간 마음의 평화와 함께 참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냄비처럼 바닷물을 끓일 수 있고, 산과 들도 갈아서 모래처럼 변화시킬 수 있다네. 사랑은 하늘을 백개의 조각으로 쪼갤 수도, 큰 충격으로 지구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네(루미).



대학원 1학년 신학생들과 면담 후 식사 자리. 모두 성인사제 되길...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맙시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랍니다. 어떤 남자가 조기 퇴직하여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그는 ‘명세서만으로는 실감이 안 난다’는 아내의 말에 퇴직금을 모두 현금으로 바꿔서 집에 가지고 갔지요.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탁 위에는 한 장의 메모가 놓여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내가 퇴직금을 들고 사라진 것입니다. 아주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행동을 하기까지 그동안 남편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컸을까요?

사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무조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 아내, 내 자녀, 내 부모는 나를 무조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가까이에 있을수록 더욱 더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해 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더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기에 더 큰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후회할 일들을 만드는 우리가 아니라, 후회할 일들을 아예 만들지 않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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