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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1 조회수77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21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Mt.7,12)

 
제1독서 에스테르 4,17(12).17(14)-17(16).17(23)-17(25)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복음 마태 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얼마 전에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한 가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가수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팀으로 나와 정말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그 과정 안에서 암 말기라는 사연을 듣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수를 정말로 힘들게 했던 것은 암이라는 병보다도 다른 것에 있었답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의 악의가 담긴 인터넷 댓글이었지요.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기 보다는 우승을 하기 위해 일부러 쑈 한 것 아니냐는 말, 더군다나 결혼까지 해서 아이까지 않았다니 이제까지의 모습은 다 거짓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의 “아직도 죽지 않았냐?”는 저급한 표현의 글에 큰 아픔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혹시 다른 이로부터 나쁜 말 듣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꾸짖는 나쁜 말만 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평가를 받고, 긍정적인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면서도, 남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또한 자신의 이러한 비판의 말, 부정적인 말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켜 외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내던져가며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 그러나 역으로 내가 비난받는다면 어떨까요?

저 역시 지난해에 어마어마한 인터넷 악성 댓글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지요. 솔직히 ‘내가 떳떳하니까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뭐.’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요. 전후 관계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없이 쓴 글, 또한 그 글에 대해서 동의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글은 저를 화나게 만들었고, 왜 이러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급의 사람들에게 원색적인 욕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치욕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에 큰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에 깊이 공감할 수가 있었지요.

별다른 의미 없이 행하는 오늘의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 역시 다른 이들로부터 똑같은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황금률이 크게 와 닿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내가 원하는 대로 먼저 내가 남에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모두가 살아갈 때, 더 이상 상처를 주는 세상이 아닌 힘과 용기를 더해 주는 세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을 비난하는데 더 이상 열광하지 맙시다. 이제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사랑하는데 더 열광하는 우리들이 되면 어떨까요?

 

최고의 장애는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 희망은 바로 뒤에 있지만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할 뿐이다(닉 부이치치).



미사가 길다는 말에 좌절하는 귀여운 복사들.



주님이 우리 관심의 큰 축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 어느 본당에서 사순특강을 했습니다. 원래 저녁 시간을 이용한 특강을 부탁했지만, 제가 시간이 없어 오전 낮 미사 중 강론을 이용해서 사순특강을 하기로 했지요. 시간 맞춰서 제의방에 들어갔습니다. 복사들이 4명 있더군요. 다음은 저와 복사들의 대화입니다.

“오늘 강론시간 무척이나 긴데 괜찮니?”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곧바로 터져 나오는 말.

“왜 길어요?” “사순특강으로 강론을 하는 것이거든.”

“짧게 하면 안 돼요?” “안 되지. 특별히 사순절을 맞이해서 특강을 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한 20분 정도 하실 거죠?” “아니지. 특강이니까 1시간 정도는 해하지.”

“미사 포함해서요?” “아니. 미사 빼고 특강만…….”

복사들이 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앞이 캄캄한가 봅니다. 사실 특강 한 시간이면 정말로 짧은 것입니다. 보통 제게 3시간 정도를 부탁하거든요. 따라서 이번 특강은 무척 짧은 것인데, 이 복사들은 길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에 빠진 것입니다.

미사와 특강을 마치고 어른들은 너무 짧았다고 이야기하시는데, 복사들은 너무 길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부터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처음부터 관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길고 지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님이 어떠합니까? 혹시 주님을 지루한 분, 내 관심 밖의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럴 경우, 성당 나가는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이유가 되면 성당을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주님이 내 관심의 큰 축을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과 함께 하는 그 모든 일에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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