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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분은 우리에게도 답할 기회를 주시리라/신앙의 해[9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2 조회수422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터키] 카파도키아 괴레메 인근 성모동굴 주변 풍경

매년 2월 22일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이다.
본래 고대 로마에서는 이날 가족 가운데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날로
죽은 이를 위하여 가족들 자리 곁에 빈 의자 하나를 마련해 놓았단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관습에 따라
4세기부터 이날에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과
오스티아로 나가는 길 위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무덤 곁에서
신앙의 아버지인 두 사도에게 공경의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 자유 선언 이후
6월 29일이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새로운 축일로 정해지면서
2월 22일은 베드로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만 남게 되었다.
이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순박한 여느 어촌의 어부였다.
그의 본디 이름은 시몬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
튼튼한 머릿돌로 여기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주신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기에.
따라서 그분께서는 바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5-19)’

그런데 세속의 눈으로만 본다면
사실 베드로는 그다지 반석과 같은 인물감이 되지 못한다.
반석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다.
믿는다고 하고는 물 위를 걷다가도 믿음이 흔들려서 물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를 반석으로 삼으셨다.

이게 가능이나 할까?
인간 시몬은 나약하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지켜 주시고 돌보아 주셨기 때문일 게다.
나약한 그는 자주 흔들렸지만,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어 성장시켜 주셨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어느 한 공동체의 ‘베드로’, 곧 ‘반석’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아시면서도 그렇게 불러 일깨워주신다.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기초가 되었다는 데 있다.
잘나고 똑똑하고 힘 있는 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어부 한 사람을 통해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만날 수 있다.

교회를 사람들의 능력으로 움직이는 조직체로만 바라보면
모든 것이 불합리하고 실망스럽다.
그러나 이런 약점과 모순투성이의 사람들 안에
일하고 계시는 놀라운 성령을 바라보면,
교회는 다시 그 권위와 아름다움을 갖는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믿는 가톨릭교회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교회 학자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허락하신 권능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베드로라는 수제자 개인과
그를 계승하는 교황에게 국한된 것인지를 따지는 것일 게다.

대답은 쉽지 않지만
넓은 뜻에서 주님의 권능은 교회 전체에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주교들에 의해서 일치되기 때문에
이들의 권한과 책임에 배타적으로 국한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베드로 자신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것이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신 것은 아니다.
곧 베드로의 후계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주님의 권능에 대한 정통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딱 깨놓고 여쭈셨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어보신다.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 그 옛날 감격에 겨운 시몬처럼 답을 못해도 좋다.
그러나 언젠가는 성령의 은총으로 꼭 그렇게 답해야 할 날이 올 게다.
아니 반드시 온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물론 믿는 모든 이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알고는 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과제는 답을 알고 있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언제가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답할 기회를 주시리라.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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