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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살아있는 표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4 조회수56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2주일
 



<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


복음: 루카 9, 28ㄴ-36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조반니 벨리니 작


보통 사순절이 시작하면 저절로 힘든 일이 생겨 노력하지 않아도 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도 저는 장염으로 고생하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조차 받아들이기를 힘겨워하고 있을 때, 저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시작하시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주일 미사를 끝내고 신자분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먼저 성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이 손을 다치셨는지 깁스를 하시고 안수를 청하며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저는 손을 어쩌다 다치셨냐고 일상적으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계에 두 손가락이 으스러져서 절단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놀라서 안수도, 말도 할 수 없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이 오히려 웃음을 지어보이시며, “아니에요, 전 하느님께 감사드려요.”라고 놀란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기계에서 손을 빼내고 손가락이 두 개만 잘린 것을 바라보며 바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어요. 한 손을 다 잃을 수도 있었잖아요.”

저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만약 나였다면...?’이란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신자분께 강론에 당신 이야기를 써도 되느냐고 여쭈어보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 오시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성경도 꾸준히 읽었는데 얼마 전까지 주춤 하시다가 손이 다치기 전에 굉장히 많이 읽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살아있는 표징’이라고 합니다. 표징이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가시적 증거를 말하는데, 그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저럴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그 힘이 있는 것입니다.

고정원씨의 예를 들어봅니다. 그분은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사람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딸들까지도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냥 그러는 척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유영철씨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으며 편지를 보내고
사형폐지 운동 등을 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그분의 진심을 믿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시고 계시기에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보면서, ‘아! 무언가 있구나!’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그분을 통해서 조금씩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어딘지 모를 존재에게서 오는 나에게는 없는
‘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함께 산에 오른 세 사도들에게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그렇게 희게 빛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표징은 앞으로 보여주실 표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표징 중 가장 큰 표징은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신들은 대부분 자비와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신이 그 자비와 사랑의 힘을 보여주었습니까? 하느님이 죽으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람의 수준으로는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의 힘’,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느님이 오늘 타볼산에서 변모한 것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의자에 편히 앉아있거나 칼을 들고 있거나 저울을 들고 있는 등의 인간의 상상으로 충분히 그려낼 수 있는 분이셨다면 그것은 저에게 어떠한 표징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사람을 위해서 사람이 되시어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임을 당하고 사탄의 세력 속에서 3일 밤낮을 갇혀있어야 했다는 것, 이것이 사람의 수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하느님 사랑의 표징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즉 표징이 되시기 위해 ‘힘’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타볼산에 오르십니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때 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십니다. 모세는 구약의 핵심은 율법서인 모세오경을, 엘리야는 예언서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예언서에서 당신에 대해 나와 있는 것을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셨을 때 그들이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듯이, ‘모세와 엘리야’는 ‘성경 전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을 통해 당신이 앞으로 당하게 될 ‘Exodos’, 즉 ‘출애굽’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1절을 직역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즉 ’탈출’ 관한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실 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도 산다.”라고 하실 때, 그 ‘말씀’이 여기서는 모세와 엘리야로 대변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직전에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강화시키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표징은 ‘힘’이 있어야합니다. 표징에 ‘힘’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곰과 같이 겨울을 나야 하는 동물들은 몸속에 6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영양분을 축적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겨울과 같은 어려운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있습니다. 평상시 영양분을 잘 비축해 두었던 사람들은 이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을 제대로 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기도 또한 꼭 절실해서 하기 보다는 앞으로 올 겨울에 대비하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 기도합니다. ‘오늘’이란 뜻은 ‘매일’ 양식을 달라는 것이고, 우리에게 양식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그리스도는 우리가 미사 때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에서 보듯이, ‘성경말씀과 성체’로 우리 앞에 현존하십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혹은 유령과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유령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육체가 죽어버렸으니 육체를 살게 하기 위해 굳이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먹어 보이시며 당신은
육체까지도 부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양식으로 끊임없이 먹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거나 공부하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이미 양식을 먹어야 할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즉 죽은 영혼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육체가 살아있어서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을 알듯이, 우리 영혼을 위해서라도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어쩌면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죽어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힘이 없어서 어떠한 표징도 되지 못합니다.

 

저는 지금도 기도의 힘을 잘 느낍니다. 강론이나 강의를 할 때, 성체조배를 하고 하는 것과 하지 않고 하는 것과는 비록 내용이 같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를 냅니다. 기도하지 않고 시작한 하루는 말도 실수하고 판단도 잘못 할 때가 많지만 충분히 기도하고 시작한 하루는 영적인 힘을 하루 종일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영혼이 배고파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기도를 하게 됩니다. 말씀도 읽고 묵상하고 성체도 영하고 다른 기도도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제 영혼이 살아있고 힘이 있고 표징이 되고 있다는 증거임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살아있기에 먹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은 예수님의 가장 큰 표징을 보고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손가락이 잘려서 감사기도를 해도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표징이 되어가면서 내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행복입니다. 우리도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힘이 없으면 배고파서 살아갈 수 없는 살아있는 표징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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