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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5 조회수841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25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Be merciful,
just as your Father is merciful.
(Lk.6,36)


 
제1독서 다니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복음 루카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오늘부터 1박2일 동안 주교님과 함께 하는 교구청 사제들 MT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새벽 묵상 글은 올리기가 힘들 것 같네요. 그곳의 인터넷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또 함께 묵는 숙소에서 저만 홀로 일어나 글을 쓰는 것도 힘들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내일 새벽 묵상 글은 없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묵상 시작합니다.

예전에 군대의 훈련소에서 했던 수류탄 투척 훈련이 기억납니다. 훈련을 시키는 교관과 조교들은 수류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잔뜩 겁을 주고,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지요. 그리고 직접 수류탄을 던지는 훈련을 시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겁이 났습니다. 혹시라도 잡고 있는 이 수류탄을 내 발 밑에 실수로 떨어트리면 어떻게 될까 라는 불안감과 함께 손바닥이 미끌미끌 할 정도로 땀이 나는 것입니다. 잠시 뒤 조교의 투척 사인을 받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던질 때, 저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던졌습니다. 멀리 던지지 못해서 그 파편이 제 쪽으로 날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갑자기 군대에서 수류탄 훈련 했던 일이 생각났던 이유는 용서(Forgive)의 원뜻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원뜻이 ‘풀어 놔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단순히 툭 떨어트려서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풀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잘못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잘못했던 죄까지 모두 나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게 잘못한 사람과 그 사람의 죄까지도 꽉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기억들이 생생한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수류탄을 멀리 던지듯이, 용서라는 잘못한 사람과 그 죄를 모두 멀리 집어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이 바로 용서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서 있을 때,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남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용서와 화해를 모르면 아무리 잘나가는 인생이라 해도 불행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용서를 이야기해주십니다. 우리들이 먼저 용서를 해야 우리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용서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요.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내가 행하는 데로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하면 심판받고, 단죄하면 단죄받을 것이며, 용서하면 용서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실제로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꿈꾸는 사람도 많지요. 하지만 그런 복수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하느님께서 분명히 갚아주십니다. 그 사람이 행한 그대로 하느님께서는 갚아주시기 때문에, 심판의 판단을 내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수류탄을 던지듯 과감하게 멀리 집어 던지십시오. 그리고 참된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 역시 용서와 사랑으로 행복의 나라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아주 소박한 손길이 사람을 변화하고 성장하게 한다(에드워드 머로).



어제 피정 강의를 했던 성심교육관입니다.



주님께 몰입합시다.

본당신부님들이 대체적으로 신학생들을 믿고 많은 일들을 시킵니다. 왜냐하면 본당의 다른 청년들도 있지만, 청년들에게 시키면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그에 반해서 신학생들은 본당신부님의 말을 잘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일처리를 깔끔하게 잘합니다. 똑같은 나이인데도 일하는 모습이 다른 것은 왜 일까요?

몰입하는 것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신학생들은 교회의 사람이 되기 위해 교회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청년들은 교회의 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일까지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렇게 집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몰입의 차이에 따라서 일의 결과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주님을 느끼고 체험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얼마나 주님께 몰입하느냐에 따라서 주님을 체험하는 것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순 제2주간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몰입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 몰입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절대로 주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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