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도 살과 피가 있는 사람이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6 조회수395 추천수0 반대(0) 신고


누군가 말을 해 줍니다. 활용했을 뿐이다고 합니다. 아이(하늘이)가 밥을 잘 못먹고 잘 아프고 할 때는 아이를 전문적으로 돌보아 줄 사람(특히, 봉사자)이 필요했지만, 이제 아이가 밥을 잘 먹고 잘 아프지도 않으니 전문적으로 돌보아 줄 사람이 필요없어진 것이다(아니겠느냐) 합니다. 꽃동네는 직원들 중심이라서 '하늘이 아빠'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오래 전의 꽃동네 방침이 있기 때문에 직원(빽 좋은)을 선택했을 뿐이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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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입니다. 낳은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두 압니다. 하지만 길러준 자식도 얼마나 소중한지 그 또한 우리 모두도 압니다.육에서 난 사랑도 귀하지만 영에서 난 사랑도 귀한 것입니다. 가슴으로 낳는 자식도 귀중합니다. 나도 살과 피가 있는 사람입니다.


복자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의 일부입니다(출처; 구원에 이르는 고통) [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그리스도의 구원적 고통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고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차원은 구속의 차원입니다.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의 사명을 띠고 보내심을 받은 하느님의 아드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악을 바로 그 뿌리에서부터 쳐부수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이 악의 뿌리들은 죄와 죽음이라는 땅 속에 뻗쳐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구체적인 죄들의 결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영생"은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결정적인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첫째로는 원죄와 더불어 비롯하여 악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린 죄의 지배를 불식하시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성화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 오해를 받는 일을 겪으셨을 뿐아니라 점점 더 소외를 당하고 적의에 둘러싸이게 되셨으며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음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게시글 '용서의 남용' 참조> ]

작년 여름 경입니다. [ 간혹 있게 되는 '거친 삯꾼'이 어떤 분과 싸워서 냉랭해 졌습니다. 거친 삯꾼은 그 어떤 분(1)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못된 말과 과격하게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고통을 호소합니다 한 두번이 아니고 화해가 되기 까지 계속 그 악한 짓을 반복할 때마다 아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부르짖음이 내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1)에게 아이의 고통이 중지되도록 서로 해결책을 모색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하늘이)에게 보복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이불로 싸매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가는 동안 얼마나 되었는지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 있고 볼과 얼굴은 온통 물로 젖어 있었습니다.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런 경우가 여태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친 삯꾼이 '얼마든지 일러주라' 하고 도리어 큰소리 칩니다. ...(줄임).....그 후에도 어떤 '빽'이 있는지 어른들의 냉각기 마다 거친 삯꾼은 자기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성으로 번번히 아이에게 보복 학대 합니다.그 거친 삯꾼은 죄없는 아기들을 죽인 악인 헤로데의 행태를 (어떤 '빽'인지) 결코 고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보호를 받아 갔습니다.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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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를 10년전 처음 만났을 때, 자해가 엄청 심했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심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하늘이를 안으면서부터 하늘이의 몸에 불편한 곳을 하나 하나씩 찾을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그것을 풀어주기만 하면 자해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99%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상세불명 혈소판 감소증(혈액종양)이 있는 아기인 줄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자해를 하면 피가 한바가지씩이나 흘린 것처럼 되었습니다. 피수혈을 자주 받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하늘이의 십자가 참조).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 관리를 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듯이 하늘이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되어 미리 자해할 소지를 없애어 주면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제 고통도 엄청나게 감수해야 했습니다. 어느 부모도 그러하듯이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이렇듯 하늘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한 버림, 성체성사적인 삶이었습니다. 한날, 어느 분께서 '하늘이는 아빠만 아는 것 같애요'하고 말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이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하늘이와 '사랑의 소통'이 있다면 하늘이를 잘 알게 되고 하늘이도 잘 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1 - 2가지 문제가 아니라 무려 10가지나 됩니다.그래서 삯꾼들은 똑같은 월급에 하늘이에게서 짜증나지 않을 수 없고 하늘이는 그런 아이들 가운데서 소외되어져 왔고 하늘이와 사랑의 소통이 없으니 하늘이는 자기 몸과 마음의 불편과 아픔으로 자해가 심했던 것입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소아암 담당 전문의께서 자해한다고 해서 모두 정신병이 아니다며 몸이 불편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소리내는 아이도 있고 하늘이 처럼 자해하기도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하늘이는 '아빠'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건강해 진 것입니다.사람들은 아빠의 사랑 때문이다고 칭찬해 주는데 저는 '아닙니다' 하고 답합니다. 사실 사랑이 정답이다 싶습니다. 거친(악하다; 보복 학대) 삯꾼과 상기 본문 처럼 일이 벌어지고, 꽃동네의 방침에 따라 이제 봉사자인 '하늘이 아빠'는 더 이상 하늘이에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도 살과 피가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육신만이 있는게 아니고 나에게도 영혼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숨결이 있습니다. 홀로 단신인 자신도 '과부'인 것입니다.그 사람의 말처럼 내가 활용되었을 뿐이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꽃동네가 꿈꾸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하늘이는 두번째 아빠를 만났고 하늘이는 새로운 아빠에게서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꽃동네가 키운다는 것을 두고서 그런 세상이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아빠가 꽃동네 안에서 버려진 하늘이와 성 가정의 모습(육적인 성 가정이 아닌, 영적인 성 가정)으로 산다는 것이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의 첫 발걸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저는 여깁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의 문을 넘어 꽃동네에서 하늘이가 자유롭게 풀릴 때, 저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늘이와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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