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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관심으로 만들어지는 그 구렁텅이를/신앙의 해[10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8 조회수423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림 : [이스라엘] 쿰란 동굴 유적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해 보자.
어느 수도원의 수사들이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미워하였단다.
이를 두고 고민하던 수도원장은 결국 그 나라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현인을 찾았다.
당신 수도원에서는 ‘예수님의 계심’을 잊고 드리는 기도가
어떤 도움이 되겠냐며 현인은 간단히 주문했단다.

무척 놀란 그는 이 이야기를 전했다.
수사들은 이제 ‘누가 예수님일까?’라며
서로 관찰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로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모시는 심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상대하였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잘못한 부분들이 있으면
그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청하는 이들도 생겼단다.
서로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인 게다.

이 분위기가 한두 달 지속되자 수도원은 형제애로 가득 찬 공동체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누가 예수님인 줄은 모를 수밖에.
결국 수도원장이 다시 그 현인을 찾았다.
‘어찌 한 사람만이 예수님일까? 다 예수님이란 생각은 잊었는가!’라며 현인은 답했다.

 
그렇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게 그리 거창하지 않다.
지금 당장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관심을 보이면
그게 바로 예수님 사랑인 게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무관심의 극치를 보여준다.
부자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거지 라자로는 종기투성이 몸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라자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 속에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라고 그 부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25-26)’
 

사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잘못은 전혀 없다.
그가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내용도 없다.
자기가 지닌 재력으로 권세를 부렸다는 모습도
거지 라자로를 못살게 군 건 더더욱 없다.
오히려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는 걸 방관만 했다.
그가 지탄을 받아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이웃에 대한 무관심일 게다.
 

그는 거지 라자로가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것을 그가 보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라자로가 죽기까지 전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의 고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라자로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라자로가 그렇게 길바닥에서 죽지는 않았을 게다.

어느 한 여인이 세상의 온갖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강력히 항의하였단다.
“왜 당신은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그분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다.
사람들이 굶거나 고통 받는 것을 두고 하느님께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비겁하다.
우리가 가진 것의 아주 조금씩만 나누어도
아니 그들에게 조그만 관심만 보여도 이런 아픔은 덜 수 있을 게다.
 

라자로는 대문 앞에서 구걸할 힘도 없이 비참한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에게 끊임없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부자는 천국으로 넘어가는 사다리를 타는
그 절호의 축복의 호기를 스스로 저버렸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무관심으로 버려진 것들이 저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의 관심으로 나타남을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꾸중에서 되새기자.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세상 것이 되는 게 아니란 걸 되새겨야 한다.
지금 우리의 무관심이 큰 구렁텅이를 만들고 있다.
메워져야 할 큰 구렁텅이가 너무나 많이 깔렸다.
무관심 속에서는 결코 구렁텅이는 메워지질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애정 어린 관심으로 메워야 한다.
지금도 우리의 무관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그 작은 구렁텅이를 만들지 않도록 이웃으로 이웃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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