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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확증은 믿음 뒤에 주신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8 조회수725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복음: 루카 16,19-31







제가 25세 되던 해에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낄 때,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무척이나 고민을 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할 때 만약 저를 부르시는 것이라면, 저를 불러주셨다는 표징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표징을 주지 않으시면서 저를 괴롭히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님이 사람처럼 변하셔서 제 앞에 서 계셨습니다. 술을 마시기는 하였지만, 석고 성모상이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마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다가 다시 쳐다보니 성모님은 여전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는 성모상이 본래대로 석고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너무 두려워 가슴이 뛰면서도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 헛것을 본 거다.’

물론 그 전이나 이후에도 아무리 술을 마시고 성모상을 쳐다보아도 그 때처럼 성모님이 살아있는 분으로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믿기를 원치 않았을 뿐입니다. 믿어서 사제가 되어 결혼을 못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오랜 고민 끝에 한 번 믿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은 행복이라는 것으로 저를 태어날 때부터 부르시고 계셨다는 확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저의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보증이
되어감을 느꼈습니다
.

바르톨로메오는 무화과나무에 앉아있는 것을 예수님이 보았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앞으로 하늘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보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증거가 있어야만 믿음을 가지겠다는 말이 틀렸음을 말해줍니다. 믿어야 증거가 주어집니다.

 

결국 믿음도 선택이고 결심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떠한 표징이 나타나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안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이미 안 믿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그 결심을 바꾸기 전까지는 어떠한 표징을 보여주더라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만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라자로가 천국으로 간 이유는 나쁜 것들만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둘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명예, 재물, 쾌락을 선택했지만, 라자로는 가난과 만족을 택했습니다. 라자로는 하느님이 없기를 원했습니다. 이 세상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라자로는 가진 것이
없었기에 하느님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 내세에서라도 위로를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 원하는 것이 결심이 되고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자는 라자로를 다시 살게 해서 자신의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예언자들을 믿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영혼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증거를 대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영혼을 보았다는 이야기나 죽었다가 살아나서 증언을 하는 이야기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저도 직접 군대 가서 귀신과 대화를 하였다는 사람과 통화를 했고, 그 귀신이 입고 있던 군복의 이름을 대니 몇 년 전에 그 부대에서 자살한 병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달루페 성모님이나 란치아노의 성체성혈 기적과 같은 것들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것들입니다
.

그러나 그들은 안 믿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선택이고 결심이기 때문입니다. 안 믿기로 결심했기에 어떠한 증거도 믿음의 확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완전하게 증명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증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둘 다 증명되지 않는다면 신중해야 할 텐데 증명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만약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안에 악어가 살 확률이 50%라면 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악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며 건너가겠습니까? 아마 1%의 확률만 있어도 함부로 건너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것도 저것도 증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결정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일단 안 믿기로 결심을 했다면 그것을 꺾을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 결심이 어리석다는 것만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이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부자처럼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들에게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 세상을 선택하고 있어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김희아씨를 생각해봅시다. 세상에서는 김희아씨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평보다는 끊임없이 감사를 선택했기에 지금의 김희아씨와 그 가족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 마음까지도 불평불만으로 살았더라면 세상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김희아씨가 자신에게 온 모든 불행들이 자신에게 어울리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 믿으려 했던 것은 결국 어떤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결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그 믿음이 결국 감사하는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있음을 알고 자녀들에게도 감사한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믿으려고 하면 그 때부터 증거를 주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나의 선택과 결심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표징이나 증거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믿음인 것이지, 믿음을 위해 증거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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