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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 천국에 가려면~[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1 조회수453 추천수0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성서를 보면 무한히 용서하라는 뜻으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여러 번 화를 내셨어요.

 

예수님의 분노를 ‘의노’ 라고 부르고

우리들의 분노를 ‘화’ 를 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의노’와 우리의 ‘화’ 는 무슨 차이가 날까요?

하느님의 나라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나, 조직, 사상 앞에서

예수님은 가차 없이 의노를 보이셨어요.

 

그러나 우리가 내는 화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많아요.

참으면 용서가 될 수가 있고, 참으면 공로가 되는 것을 못 참고 분노해요.

그 결과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어요.

 

예수님의 의노의 결과는

다른 사람을 깨우치고 가르치는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다른 사람 일에 관여 안합니다.

명동 복판에서 깡패한테 누가 맞아죽어도 그냥 지나가요.

버스 안에서 누가 소매치기당해도 잠자는 척하거나 창밖을 내다보지요.

옆집에서 ‘불이야!’ 하면 자기 집으로 옮겨 붙을까봐 나가봐요.

지극한 이기주의지요.

 

현재 내가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

2000년 전의 예수님께서 똑같이 의노하지 않으실까?

 

첫 번째, 예수님은 위선자들에게 의노를 보이셨어요.

위선자들이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 자기가 하는 말 그대로 사는 사람 없어요.

 

나도 입만 열면 좋은 이야기 하는 사람이지만

종이 반 접어서 귀가 맞게끔 살지는 못해요.

그러나 적어도 이런 이야기는 들어야 위선자가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 신부님 당신 하신 이야기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신다!,

 

예수님은 위선자들의 대표적인 사람들인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에게 강하게 분노를 보이십니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이 회칠한 무덤 같은 놈들아!’

 

두 번째,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노를 보이십니다.

무관심을 다른 말로 ‘무책임하다!’ 라고 하는데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부자와 나자로가 살다가 죽었어요.

부자는 지옥에 갔고, 나자로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 품안에 안겼지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뭐예요?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나자로를 발로 찬 적도 없고

부자가 손을 씻고 버린 빵으로 나자로가 먹고 살았어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보면 착하게 산다고 천국 간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적극적인 선을 베풀어야 천국에 갑니다.

 

우리 신자들 중에도 본당에서는 오만 봉사 다하면서

자기 부모나 친척에게 매정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 참 많아요.

시아버지, 시어머니 친정엄마 병들었다고 양로원에 처박아놓고

자식들은 서로 몇 푼씩 돈 내는 것 가지고 싸워요.

‘형이니까 7 내고 내가 3내야지~’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관심하게 살고 있다면

이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 명심하셔야지요.

그렇게 살고 있다면 성사거리가 분명할 겁니다.

 

세 번째 의노의 대상은 자기 법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법이란 시대에 따라서 만든 사람에 따라 다 달라요.

세상의 법은 실정법이라 불안정합니다.

세상의 법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법도 다 불안정 해요.

 

그러나 사람들은 형편없이 맞지 않는 자기 자신의 잣대로 남을 재지요.

하느님을 재고, 남편을 재고, 이웃을, 본당신부를 재고, 자기 인생을 재요.

남편의 눈금과 아내의 눈금이 다르니 싸울 수밖에 없지요.

 

우리들의 그 엉터리 눈금, 자기가 만든 법은 성령의 불로 태워버려야 해요.

그 안에 예수님의 잣대,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 관용의 잣대!

받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잣대로 재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면서 받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상처가 생깁니다.

부부지간에 왜 상처가 생깁니까?

주기는 줘요~

주면서  '설마, 조금은 돌아오겠지~ '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안 들어올 때가 더 많아요.

 

그럴 때 씨앗이 떨어져요....그 씨앗의 이름은 ‘서운한 씨앗’

그 씨앗은 비료 안주고 물 안줘도 잘 자라요.

서운한 씨앗에서 미움의 싹이 올라오고~

미움의 싹에서 분노의 줄기가 자라고 ~

분노의 줄기에서 무관심의 열매가 맺혀요.

 

차라리 아웅다웅 싸울 때는 관계개선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부부지간에도 무관심의 단계에 가면 한집에 살아도 그냥 사는 거예요.

요즘은 많은 부부들이 딴방 쓰는 부부가 많아요.

 

하느님 법보다 자기 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첫 번째, 남을 많이 판단해요.

자기 법이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말로써 세상에 퍼져요.

말로써 혀를 다스릴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 가슴 속에 늘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에 화병이 들어있어요.

자기 잣대가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기쁘게 살 수 없어요.

그것만 버리면 자유인이 될 수 있는데

영적으로 훨훨 날아다닐 수가 있는데

죽을 때까지 그걸 못 버려요.

 

네 번째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은 착취하는 인간이에요.

오늘복음에 나오는 성전정화사건이 대표적인 거지요.

 

유대인들은 일 년 에 한 번씩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해요.

예루살렘 성전 문을 통과하려면 성전세를 내야하는데

환전상들이 어마어마한 폭리를 했어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번제물이 필요했는데

밖에서 정성껏 키워서 들어가면 제사장들이 보고

‘퇴짜!’ 하면서 안받아줘요.

그러면서 성전 안에 있는 비둘기 장사에게 사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곳의 비둘기 값이 세상 비둘기값이랑 비교해서 2~30배 차이가 나요.

그러니 성전에 오는 것이 죽을 맛이지요.

그 대사제 밑에 조직폭력배 같은 깡패가 있어서 감히 덤빌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이 그 서슬 퍼런 그곳에 가셔서 환전상을 뒤엎으며

‘내 아버지 집을 도둑놈의 소굴로 만들지 마라!’

 

이 성전 정화사건 때문에 예수님의 명이 단축된 거예요.

‘아, 여기가 어디라고 우리 조직에 대항해?’

 

예수님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지요?

하느님의 자식을 착취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독점과 폭리가 성전 뜰 안에서 행해지고 있었어요.

순진한 순례자들에게 신앙심을 빙자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감곡성당에 있을 때, 빚을 갚고 난 후부터는

그 주변의 땅을 사기 시작했어요.

감곡 성당이 땅이 없어서 산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모텔이 들어서고

장사꾼들이 들어 올까봐 산거예요.

 

루르드 가면 호텔 사장이나 성물 집 사장들, 다 냉담해요.

‘왜 냉담하느냐~’고 물어보면 성물 파느라고 바빠서 성당 못 간대요.

성지에 사는 사람들이 장사꾼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 법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

착취하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가차 없는 분노를 보이셨다는 것이지요.

 

네 가지의 의노의 대상을 말씀 드렸는데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이 네 가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첫 번째, 사순절 동안 위선자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두 번째, 가까운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산 적 없는가~

세 번째, 성령의 법보다는 내 법을 가지고

늘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가~

네 번째, 착취하고 살며 내 영혼에 어둠이 짙게 만들지 않았는가~

회개해야 합니다.

 

착취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착취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주신 내 시간 내가 잘못 쓰고 있다면

그것도 착취하고 있는 겁니다.

 

영적인 착취가 있다는 것, 명심하면서

주님의 의노를 풀어드릴 수 있도록

아름답고 예쁘게 살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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