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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3/1일 금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1 조회수32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3월1일 목요일 복음묵상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마태오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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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내어주실 때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는 대목이다.하지만 그 마지막 바람도 무너지고 만다.

나는 이 소작인의 비유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편치가 않다.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는 없다며 부정을 하다가도,
우리가 걸어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가슴 아픈 일들을 볼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현실에 아픈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에게 사람은 선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지,
아니면 악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지 갈등을 느낄 때가 많다.
어떤 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그 뜻을 따를 수 있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것이 우리가 참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자유의지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왜 인간에게 악을 허락하셨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질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악을 이길 수 있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한없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냐는 환경도 조건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으로 지으셨으니,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랑으로 지으셨다면서 인형이나 로봇을 만들지는 않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주마저 거부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의지.
그 자유의지를 잘못 이해한 것은 인간들이었고, 그 결과 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시고 만다.
당신의 외아들을 대속(代贖)의 제물로 내어주신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나보다.

하느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우리 인간이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어내신 인간들.
그러기에 사랑이어야 하는 인간들.
하지만 배신의 역사를 쓴 인간들.

당신의 사랑에 책임을 지셔야 했던 하느님.
그 마음을 감히 헤아려본다.

알면서도 번번이 죄에 주저앉고 마는 우리의 나약함.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보속의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
죄의 무게가 버겁게 느낄 때,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파하실 마음 때문에 힘들어 해야 한다.

악과 죄는 극복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각자의 삶을 통해서 작은 예수가 되려는 자기 싸움이 있다면,
그분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그 어떤 악과 죄도 힘을 잃고 말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많은 죄에 넘어지는 삶 속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제 자리에 돌아올 것을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그분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는 삶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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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 – 이사야 43,2
“나는 너를 구할 것이다.” 시편 50,15
“나는 너를 지켜 볼 것이다.” – 시편32,8
“나는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 예레미아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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