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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1 조회수61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1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The stone that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ornerstone;
by the Lord has this been done,
and it is wonderful in our eyes?
(Mt.21,42)


 
제1독서 창세 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복음 마태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언젠가 심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계시더군요. 가정이 평화롭지 못한 것, 남편과 자녀들이 잘 되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 역시 행복하지 못한 것이 바로 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죄를 지은 자신을 과연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것인가 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실 종교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 그것도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 신자 중에 지나친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님의 심판과 벌에 대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주님께서 인정 없이 처벌하기 위한 심판을 하시는 무시무시한 분일까요? 왜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계명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랑의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보지 못하고 주님의 심판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다보니 절망스러운 결론밖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자신의 틀에 주님을 맞추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을 잘 아는 사람은 더욱 더 겸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내 틀에 맞추기보다, 내가 주님의 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으로 기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그 큰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주님께 맞추는 생활을 통해 자신 안에서 커가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 온갖 불평불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기준만을 최고로 여기는 분들... 모두가 바로 주님께 맞추기보다, 자신의 틀에 주님을 맞추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포도원 소작인들이 포도밭 주인을 제대로 알았다면 심지어 상속자인 아들까지 죽이려는 생각을 했을까요? 소출을 받으러 갔던 종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주인은 곧바로 처벌하지 않지요. 더 많은 종을 보내는 등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외아들까지도 보내어 또 다시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알았더라면 그런 잔혹한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틀에 모든 것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에게 필요 없는 존재로, 자신들보다도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로 또한 세상의 것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 비유 말씀은 예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계를 들어 말씀하신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틀에 주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주님의 틀에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겸손의 삶, 사랑의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월의 첫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행복의 삶을 향해 주님께 철저히 맞추시길 바랍니다.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시드니 스미스).



오늘 신학교에서 직수여식이 있습니다. 제가 독서직 받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냐고,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보면, 독심술을 사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아는 양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지요. 사람들은 실수하는 사람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긴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라고 하지요. 실수 없는 사람, 정말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인간적이지 않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실수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실수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실수 한 번 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실수에 멈춰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실수를 넘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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