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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다의 슬픈 진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2 조회수345 추천수3 반대(0) 신고

아마도 주님께서는 12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사람에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또한 성부님의 계획을 다 아셨기에 하느님의 인간 구원 사에 사람이 반듯이
한 부분의 조역이 필요하기에 그에 맞는 조역 인물을 물색하신 게 아닐까?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많은 분들이 형제님께서 생각하시는 비슷한 생각을 하시고 계시고 저 또한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사람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이 묵상
하고자 그동안 애써왔습니다.

그렇게 묵상을 하는 과정 안에서 한 가지 깨달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도 많지만 성경에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한 말씀도 무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고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21, 25)

이 말씀에 따라 성경을 바라보고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다른 세 제자는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부르셨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신 제자들도 있는데 가리옷 유다와 다른
몇 제자들은 부르시는 장면을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 부르신 제자도 있지만 제자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요청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가리옷 유다가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 있었고 그것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예수님과 나타나엘과의 대화 장면이라고 배웠습니다. 바로 이 구절입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주석성경의 설명을 옮겨 드리겠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앉다'는 라삐들이 흔히 쓰는 표현 방식으로, 선악을 알려
준다는 나무 아래에 앉아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율법 학자들의 관습과 관련
지어 이해하기도 한다. 나타나엘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타나엘도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게 해 주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 특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메시아에 관한 부분들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셨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가능
하기는 하지만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뜻이 확실하지 않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분의 초자연적인 지식, 곧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의 능력을 드러
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당시 메시아 대망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던 시기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
단 중에서 어떤 분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내지는
어떤 분은 나타나엘처럼 누군가를 통해 부르시기도 하는데 가리옷 유다와
몇분의 제자들은 부르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경에 다 기록하지 않아도 쉽게 우리들이 알 수 있는 부분들은 많이 생략되었
을 것 같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근거로 가리옷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를 묵상해
본 것이지요. 아마 유다는 나타나엘처럼 메시아 대망사상이 아주 강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요? 이스라엘에 다윗왕과 같은 힘 있는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열망했던 그가 어느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래서 스스로 찾아와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가리옷 유다에게 슬픈 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동체의 돈 주머니를 왜 유다에게 맡기셨을까요?
한 공동체에서 돈 주머니는 누구에게 맡길까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유다를 모르셔서 그에게 돈 주머니를 맡기셨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유다를 잘 아셨기에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다의 속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시는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유다에게
"너를 내가 이만큼 믿고 있어!"라고 당신의 믿음을 보여 주시는 부분이
유다에게 돈 주머니를 맡기셨다고 묵상한 것입니다. 사람은 믿는 만큼
살게 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당신이 유다를 누구보다도
믿고 있다는 확신을 주심으로써 유다가 예수님의 그 믿음을 온전히 받아들여
믿음의 사람이 되길 희망하셨고 기다려 주셨다는 의미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돈 주머니를 자기 맘대로 썼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돈 주머니를 자기 맘대로 썼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유다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해방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일하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닐런지요?

공동체의 돈 주머니를 공동체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여쭙고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 부분이 유다의 슬픈 진실일 것입니다.
아니 유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슬픈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물론 부르심이 먼저
있었겠지만 보통 우리도 유다의 경우와 비슷하게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면 유다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다에게 맡긴 돈 주머니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이 꼭 금전인 돈 만을 의미할까요?
돈은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을 돈을 위해 살듯이 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믿는다고 당신과 함께 의논하며 잘 해 보자고 하신 그 마음을
유다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공동체의 돈을 함부로 썼듯이 우리들도 유다처럼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예수님과 의논(기도)하지 않고 우리 맘대로 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요? 저는 이것이 유다의 슬픈 진실이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자기 맘대로 살다가 멸망했지
하느님께서 유다를 그런 역활을 위해 뽑으신 것은 아닐 것이라는 묵상을 한 내용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이 세상 누구도 멸망할 사람으로 선택되어 지음 받은 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성경은 이미 겪은
어떤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재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미 있었던 사건을 구원사에 비추어 재해석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며 우리를 바로
잡아 주시어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예수님과 의논(기도)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은 모두 유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정리하면서 묵상을 마칩니다.
좋은 묵상 자료을 주신 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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