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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믿음과 감사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2 조회수596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3주일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복음: 루카 13,1-9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믿음과 감사 >

              저는 다른 것보다도 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유학 할 때도 가장 싫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백인이나 흑인들과 함께 있다 보니까 제가 난장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키에 대한 열등감은 제가 대학생 때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미팅을 나갔는데 어떤 여대 응원부가 나왔습니다. 저의 친구들은 다 컸지만 저는 거기 나온 4명의 여자애들보다 더 작았었습니다. 가장 작은 애가 170이 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춤추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정말 가기 싫었지만 따라갔습니다. 나보다 더 키가 큰 여자들이 저를 내려다보며 춤을 추었습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미팅이었고, 그 이후로는 미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어떤 자매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제가 키 큰 여자를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자매도 저보다 키가 컸습니다. 저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것이라 생각했고 2세를 위해서도 키 큰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함께 길을 걸을 때는 매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앉아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함께 걸으면 사람들이 이 불균형한 키를 지닌 커플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남들은 시선도 안 주는데 제가 열등감을 가지니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불편해하니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내 안에 해결하지 못한 것, 키에 대한 콤플렉스 혹은 열등감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내 안에 머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만만 가지고 살게 만듭니다. 내가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이유는 내 안에 열등감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으니 내 여자가 더 큰 남자를 만나면 나를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결국 관계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키가 작아서 선택한 키 큰 여자가 채워줄 수 없는 것, 즉 아담하게 내 안에 안길 수 있는 사람을 은연중에 그리워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결혼도 할 필요도 없고 남보다 크게 보일 필요도 없는데 얼마 전에 신발을 살 대 깔창을 살짝 깔아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불평불만이 내 안에서 감사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나의 자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은 3년씩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합니다. 만약 열매가 잘 맺히다가 1년만 열매를 맺지 못해도 이젠 나무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3년씩이나 기다려 주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1년을 더 청하는 재배인은 기다릴 수 있는 한계보다 더 기다려보자고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이렇게 기다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바로 잘라버리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은 당신의 무한한 인내심으로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주실 수 있다는 자비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변하고자만 한다면 하느님은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주실 분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포도나무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요? 무화과나무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같은 복음에서 무화과나무가 어디에 나오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루카복음에서는 무화과나무에 관련하여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5-6)

같은 구절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실 때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여 결국 그것을 저주하여 말라버리게 만든 내용에서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물론 여기서도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해 강조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지라고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의 열매에 관해 말씀하시기 위해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복음에서는 그것이 예루살렘의 성전정화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물을 바치다가 죽은 갈릴래아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즉 오늘복음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믿음이 결여된 전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못된 소작인의 비유에서 보듯이 감사의 봉헌이 결여된 전례를 말합니다. 전례는 믿음으로 아주 작은 것에서도 감사를 찾아내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입니다. 이것이 결여된 전례는 예루살렘 성전처럼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저주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는 것은 감사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히게 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감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의 것들을 청소해야 합니다. 내 안의 성전이 정화되지 않으면 감사의 열매가 나올 수 없습니다. 키를 볼 것이 아니라 그밖에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감사한 것들을 보아야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감사의 찬미가 바로 무화과나무 열매인 것입니다.

 

자꾸 돌아가신 분들을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열매가 끝내 맺히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그 사람에게는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재산을 주었는데도 그 재산으로 돈놀이를 했다는 몇몇 사람들의 말에 화가 나서 목숨을 끊은 최진실씨, 자기에게 맡겨진 어머니와 조카들, 또한 감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감정들로 누나를 따라간 최진영씨, 그리고 간신히 살아왔지만 헤어지자는 애인의 말에 이 둘을 따라간 조성민씨는 우리에게 감사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더 이상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오늘 복음말씀의 경고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씨를 발견하고 그 나무를 키워 삶 자체가 감사가 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KBS [강연 100도씨]에서 얼굴장애를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김희아씨의 사연을 매우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1QmlQrTBbI]

김희아씨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얼굴이 붉은 모반으로 덮여있어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놀라서 마스크를 쓰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김희아를 칠판 앞에 세워놓고 반 아이들보고 희아를 그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 그린 것을 들어보라고 하였을 때, 어린 희아는 50장에 달하는 자기 얼굴이 그려진 도화지를 한꺼번에 바라보며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보육원에서 자기를 도와주겠다던 분들이 생겼으나 두 달 만에 희아의 얼굴을 보고는 재정적 지원을 바로 끊어버림으로써 또 한 번의 상처를 크게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는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생전 처음으로 긍정적인 차별을 받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주었던 보육원 원장님이 취직이 되지 않는 희아씨를 보육원 교사로 일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화장을 짓게 하고 1년 동안 만났지만 결국 1년째 되는 날 민낯으로 마주치게 되어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그것을 잘 받아주었습니다.

2년 째 되는 날, 오른쪽 얼굴이 붓고 코피가 쏟아져 병원에 갔더니 얼굴에 암이 퍼져서 뼈까지 다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년 동안 자신을 사랑해왔던 남자친구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어서 헤어지자는 전화를 하고 수술을 받았는데, 남자친구는 다른 쪽 얼굴까지 함몰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 주었고, 7년 정도 사귄 뒤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시댁 부모님들도 김희아씨를 잘 받아주었고, 지금은 아주 예쁜 두 딸의 어머니가 되어있습니다.

어느 날 6살 된 큰 딸 예은이와 역할놀이를 하였습니다. 엄마와 딸의 역할을 바꾸어서, 엄마가 엄마 나 배고파!”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딸이 배고파? 그래 엄마가 맘마 줄게. 조금만 기다려?”라고 대답하였을 때, 희아씨는 생전 처음 엄마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또 듣고 싶어서 엄마, 나 아파라고 할 때 딸은 아가, 많이 아파? 엄마가 안 아플 때까지 안고 지켜줄게?”라고 하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딸이 어머니에게 얼굴이 왜 그리 되었느냐고, 또 왜 보육원에 갔느냐고 물어보다가 이불속에서 어머니를 자기 작은 팔로 꼭 안아주며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엄마, 엄마는 엄마가 없어서 참 불쌍하다.”

엄마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자기가 항상 그래왔듯이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주자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넘어져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예은아, 넘어졌는데 이것밖에 안 다쳤네. 이이고 참 감사하네.”

며칠 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기가 손에 피를 흘리며 어머니에게 뛰어왔습니다.

엄마, 넘어졌는데 이것밖에 안 다쳤어요. 참 다행이지요?”

이렇게 김희아씨는 아주 작은 것들에서 감사를 찾아냈습니다. 그 감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결국 자기를 낳고 버린 어머니께도 미안하고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예은이가 저에게 보여주는 재롱을 제가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못해 저는 너무 죄송합니다. 이렇게 아픈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서 어머니 모습을 아프게 해 주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세상에서 이렇게 일찍 놓아주셨기에, 보육원의 단체생활을 통해 빨리 아프고 빨리 슬프고 빨리 눈물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픔이 없었다면 감사도 몰랐을 것입니다. 저에게 슬픔이 없었다면 기쁨도 몰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김희아씨를 보며 이런 말도 한다고 합니다.

밥맛이야, 내가 네 모습이면 벌써 죽었다.”

저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김희아씨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저니까... 감당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 주어진 것이고, 저에게 어울리니까 저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김희아씨가 엄마의 사랑을 자녀를 통해 느끼게 하고 또 남편과 자녀들 때문에 행복하게 하고, 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좋은 지향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힘들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새 그 산은 내 뒤에 놓이게 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고, 그 행복을 찾도록 거룩한 인내심으로 기다려주십니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조급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이루어질 때까지 하느님은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화과나무, 그 나무에서 감사와 행복의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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