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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3 조회수600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3일 사순 제3주일



Sir, leave it for this year also,
and I shall cultivate the ground around it and fertilize it;
it may bear fruit in the future. If not you can cut it down.
(Lk.13,8-9)


 
제1독서 탈출 3,1-8ㄱㄷ.13-15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제2독서 1코린 10,1-6.10-12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복음 루카 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억울한 일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자신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인 취급을 받게 되었을 때, 항상 올바르게 행동했으나 오히려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굳게 믿었으나 배신의 아픔만을 얻게 되었을 때. 분명히 억울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억울한 일을 왜 내가 경험해야만 할까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쉽게 말합니다.

“네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래.”

정말로 그럴까요? 그렇다면 더 많은 잘못과 죄를 범하는 사람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세상은 내 머리로 미리 계산해 놓아도 영 다른 결과를 맞닥뜨리도록 만드는 곳입니다.

사실 그 억울함을 호소할 때를 잘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잘못이 있더라도 자신의 지금 상황은 너무 과하다면서 불평불만을 퍼붓습니다.

어떤 직장상사가 회식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신입 여직원의 손을 잡았다가 성희롱으로 문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상사 입장에서는 손 한 번 잡은 것이 성희롱으로 회부된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자신의 생각만을 받아들으며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의 억울함만을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역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 때, 분명 그 상황이 단순히 억울한 순간이 아닌 오히려 주님의 뜻을 느끼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사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빌라도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실로암 탑이 무너져서 깔려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죽은 것일까요? 당시의 사람들은 불행이 죄의 값으로 받는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입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요. 그보다 죄의 생활에서 벗어나 구원의 손길을 잡을 수 있는 회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매 순간 회개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단순히 억울한 상황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더 큰 삶인 구원의 삶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지혜로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회개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억울하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나의 잘못된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주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는 사순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추하든 아름답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 이상 든든한 출발이 어디 있으랴(칼릴 지브란).


고강동성당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이곳에서 미사와 특강을 한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떤 학생이 유명한 프로듀서(PD)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피디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요?”

그러자 그는 “아뇨.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피디가 될 수도 있어요.”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질문이나 답변이나 똑같은 것 같지요? 그러나 그는 분명히 다르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일 년에 백 권씩 억지로 읽으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러나 피디 시험에 떨어지면 괜히 고생만 하고 억울하죠. 하지만 책이 좋아서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피디가 되지 않아도 독서의 즐거움을 누렸으니 후회할 일은 없죠.”

어떤 관점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한 상황은 내 마음가짐에 따라서 만들어지기도, 또 반대로 더 즐거운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겪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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