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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열등감이 나를 조작한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3 조회수639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3주간 월요일


<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복음: 루카 4,24ㄴ-30






원죄


마솔리노(Masolino) 작


     < 열등감이 나를 조작한다. >

         넌 아버지가 없이 자라서 결혼하기 힘들겠다.”

너는 머리가 안 좋아서 누가 데려가겠니?”

넌 어떻게 허리랑 히프랑 구분이 안 되니?”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들을 받고 살아갑니다.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들은 말들은 우리 안에 상처를 남깁니다. 이 상처들이 우리 안에 남기는 것은 열등감이고 또 그것이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만약 부모 없이 자란 사람이 그것이 자기에게 커다란 상처고 열등감일 때, 애인을 사귀다가도 그 사람이 자신의 치부를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뜬금없이 헤어지자고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도 자신 안에 상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혜민 스님은 TV 스타특강 쇼에 나와서 이와 관련된 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스님이 김승우가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에 앞서 인터넷으로 김승우씨의 프로필을 검색하였다고 합니다. 그 프로필에는 김승우씨의 키가 180이라고 나와 있어서, 약간 키가 작은 스님은 함께 섰을 때 매우 작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막상 김승우씨를 보는 순간, ‘... 180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왜 스님은 김승우씨가 옷을 잘 입고 얼굴도 잘 생겼음에도 키부터 보였을까요? 스님은 그 이유가 스님이 키가 조금 작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은 실제로는 그 사람이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를 볼 때 자신이 있는 문제부터 보려고 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상처가 있고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식이 상대에게 똑같은 상처를 입혀서 자신의 상처의 고통을 경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자기보호 방식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믿도록 가짜 자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높은 하이힐을 신는다든지 깔창을 까는 방식입니다. 나의 트라우마를 숨기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신들의 성기를 가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몸도 나무 뒤에 숨깁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남이 나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도 화가 나는 것이고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넌 키가 작아. 넌 머리가 안 좋아. 넌 못생겼어. ...”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굳이 그 소리를 들어도 기분 나쁠 필요가 없는데 기분이 나쁜 이유는 자신이 숨기는 모습이 밝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이 나를 뻔히 쳐다보기만 해도 나의 부끄러운 면을 보고 비웃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치유하는 방법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만족하고 할 수 있다면 감사하는 길입니다. 김희아씨의 예에서도 보듯이 지금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 나에게 가장 어울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준 것이라는 믿음이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러면 열등감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결국 자신이 더 잘나 보이려는 자아를 죽이고 겸손하게 받은 다른 많은 것들부터 감사드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며 엘리야와 나아만의 예를 들어주십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사실이지만 고향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납니다. 자신들은 다르게 취급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듣는데도 화가 난다면 내 안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고, 그런 상처가 있다는 뜻은 그만큼 자아가 강하다는 뜻이고, 자아가 강하다는 말은 그만큼 교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자아가 큰 만큼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빛으로써 우리 상처를 환히 비추고 부끄럽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감사합시다. 남이 나에게 하는 말에 화가 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실하게 내 모든 단점들을 밝힙시다. 주님이 주신 것이니 좋은 것이라고 여깁시다.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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