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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4 조회수79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4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k.4,24)


 
제1독서 2열왕 5,1-15ㄷ

 
그 무렵 1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2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3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4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5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7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8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9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복음 루카 4,24ㄴ-30

예수님께서 나자렛에 도착하시어 회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던, 그러니까 제가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길거리에서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제가 다가와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급하게 광주의 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절대로 사기꾼이 아님을 힘주어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이분의 상황이 안타까워 지갑을 꺼내 광주까지 내려가는 차비라는 3만원을 주었습니다. 이분께서는 너무나 고맙다면서 제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가셨고, 분명히 곧바로 입금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음날 제 통장에 입금이 되었는지 확인해 보았지요. 입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확인했지만 역시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5일 뒤, 이분이 주신 명함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엉뚱한 번호더군요. 그리고 명함에 적혀 있는 회사는 실제로 있지 않은 유령회사였습니다. 맞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이었지요. 저는 그분을 믿었지만, 그분은 저를 이용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종종 제게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몇몇 사람을 만났지요. 그때마다 저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뒤, 어디를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당황했습니다. 집까지 돌아가려면 차비라도 있어야 할 텐데 지갑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우선 땅바닥만 쳐다보게 되더군요. 혹시라도 떨어진 돈이 있을까 싶어서요.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사람들의 얼굴만 쳐다보았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방법은 모르는 사람에게 차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밖에 없었지요.

다행히 기적처럼 아는 사람을 만나서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때의 일을 겪은 뒤에는 모르는 누군가가 요청할 때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물론 나 역시도 여기에 예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종 사기를 치면서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고 또 나와 아는 사람들만 해결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어떨까요?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사랑의 삶과 정반대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편적인 사랑보다는 편협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자신들만이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철저하게 반대하십니다. 구원의 길은 모든 이스라엘과 이방인 할 것 없이 모든 이에게 환하게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처럼 다른 이들을 믿지 못하고 편협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역시 모든 이들에게 열린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웃음 없는 하루는, 그날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다.(찰리 채플린)



어제 미사 강론이 그렇게 길었는데도 예쁘게 잘 들어준 복사아이들. 고마워요.



실패에 대해...

실패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널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꼭 필요 없는 것일까요? 물론 실패가 많으면 많을수록 위축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깊은 좌절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실패를 통해서 더 앞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아십니까? 그는 총 714회의 홈런을 기록했지요. 그러나 그가 무려 1,330회의 삼진 아웃을 당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실패의 횟수가 성공의 횟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성공만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뿐, 실패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330회의 실패는 714회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베이브 루스뿐만이 아니라 실패를 극복해서 진정한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실패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극복하지 못할 대상으로 또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언젠가 우상숭배라는 말씀드렸지요. 맞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 역시 우상숭배이며 큰 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 안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특히 당신과 함께 하려는 우리를 절대로 내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앞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실패에 굴하지 않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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