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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주님- 2013.3.4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4 조회수32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3.4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열왕기 하5,1-15ㄷ 루카4,24ㄴ-30

 

 

 

 



하느님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주님-

 

 

 


하느님 앞에 만민은 평등합니다.

하느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 중 이런 하느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 깨달음을 나눕니다.

 

 

 

 



첫째, 며칠 체류하지 않았지만


캐나다 뱅쿠버에서의 인상은 매우 깊고 오래 남습니다.

 

‘법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이런 나라가 진정 선진국임을 깨닫습니다.


부자들은 45%이상의 세금을 내기에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복지가 잘된 나라라

내용은 사회주의국가 같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니 정부에 대한 불만도 없으니 정치에도 무관심하여

많은 이들이 수상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합니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에 따른 무관심이 아니라

위정자들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무관심이라는 것입니다.

 


법 앞에 평등이라

종교 건물 역시 특권층을 상징하는 높고 큰 모습이 아닌

작고 낮은 겸손하기가 흡사 지역사회에 묻힌 모습으로 와 닿았습니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한 현실을 통해

‘하느님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됩니다.

 

 

 

 



둘째, 하느님께는 경계가 없습니다.


하여 차별도 선입견도 편견도 하느님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를, 민족을, 국경을, 인종을 가르고 차별하지

하느님께는 이런 차별이 없고, 하느님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말 그대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으로

당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자녀들이요

서로는 형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아니곤 앞으로의 다문화사회에서

갈등과 분열을 해결할 길은 요원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경계 없음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 엘리사를 통해

당신을 찾는 겸손한 이방인 나아만의 나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엘리야, 엘리사의 예를 들면서

선포하는 하느님도 바로 이런 경계가 없는 하느님이요

이런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해

예수님을 배척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고향 사람들입니다.

 

 

 

 



셋째, 바로 이런 경계가 없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을 닮은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사와 예수님입니다.

 


참 의연하고 당당하고 자유롭습니다.


나아만의 방문에 주눅 들어 혼비백산하는 이스라엘 임금과

의연하고 당당한 엘리사와는 참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엘리사는 일체의 과잉반응 없이

절제된 언행으로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합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사람답게 고향 사람들의 배척과 냉대에

좌절하거나 위축됨 없이 홀연히 자유롭게 떠납니다.


바로 다음 복음 말미의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사람을 다치거나 막을 수 없음을 봅니다.

 

 

 

 



넷째, 하느님을 만나야
차별, 선입견, 편견의 고질적 마음의 질병도 치유됩니다.

 


나아만은 확실히 열린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고질적 마음의 질병을 넘어설 수 있었고

주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어린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요르단 강에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요구를 거부하려다

부하들의 충고에 따라 겸손히 순종함으로

나병이 치유된 믿음의 사람 나아만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이런 선입견, 편견에서 결코 벗어나는데 실패했습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완고히 굳어진 고향사람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나아만의 하느님 고백을 통해 육신의 나병은 물론

편견, 선입견, 차별 의식 등 영혼의 병도 완전히 치유된

자유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영육의 치유로 온전한 자유인임을 깨닫습니다.

 


1독서의 서두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빛과 어둠이, 장점과 단점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나병은 나아만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복된 병이었습니다.

나병의 치유를 통해 주님을 만났고 영혼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나병이 없었다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해

겸손도, 삶의 깊이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차별, 편견, 선입견, 모든 부정적 요소들을

하느님을 만나는 계기로 삼을 때

온전한 영육의 치유와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고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나아만을 치유해 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영육의 병을 치유해주시어

너그럽고 자비하신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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