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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만이 진정한 평화를 안겨줄 게다/신앙의 해[10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5 조회수368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이스라엘]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성당 외부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의 연방 정부 청사에 대한 폭탄 테러 사건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커다란 참사였다.
이 사건의 범죄자는 곧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고
희생자들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많은 언론은 사형이 집행된 이후
이 장면을 지켜본 희생자들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희생자들 부모와 가족들은 하나같이
무엇인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느낌과 허무한 마음뿐이란다.
또한 후련해질 것으로 기대한 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나.
이는 우리에게 가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처벌이
자신이 받은 상처의 치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잘 말해 준다.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오직 용서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기에.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용서가 어려운데,
우리가 서로 용서하며 산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을 바라보면 용서가 잘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다.
우리가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것과 같을 게다.
그 시건방진 생각의 뿌리는 하느님에 대한 교만에서 나오기에.
 

남이 나를 ‘섭섭하게 했던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하지만 남이 나를 ‘고맙게 했던 일’은 어느새 잊는다.
내가 남에게 ‘뭔가를 베풀었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상처 주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산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요 이렇게 사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요 삶이다.

세상살이에서 아무리 노력했어도
크나큰 아픔을 주고 상처를 남긴 이를 지금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으려면 우리도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
미움과 복수심은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고통만을 가중시킬 것이기에.
죄인인 우리를 주님께서 먼저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못다 한 용서를 주님께 청하자.
용서는 끊임없이 닦고 또 닦아야 하는 덕일 게다.
 

남에게 도움 받았던 일은 되도록 잊지는 말자.
그렇게 살면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도 적어질 게다.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인생은 고마운 일만 기억하고 살기에도 너무나 짧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단다.
그러나 큰 아픔을 받아 상처만 남은 것은 주님께 의탁하고 맡겨야 할 게다.
‘미운 마음’ 역시 그렇게 그분께 함께 드리자.
붙들고 있을수록 자기 마음만 차가워질 뿐이다.
 

무엇보다도 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그것이 용서의 출발이다.
용서받고 싶은 것만큼 꼭 용서하자.
용서는 사랑의 구체적 행위이다.


용서받는 일도 은총이지만 용서하는 일은 더 은총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용서받지 못해서, 용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택하셨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못다 한 용서를 되돌아보자.
베드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그 많은 일곱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용서하지 못한 게 우리 주위에 수없이 널려있다.
‘네가 먼저’라면서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라며 용기를 갖고 용서를 청하자.
그 마무리는 주님께서 다 해주실 게다.
용서받은 일도 용서하는 일도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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