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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3/5일 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5 조회수444 추천수8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3월5일 화요일 복음묵상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오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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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에 무지 약한 편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두 번이나 숫자놀이를 하게 만든다.

먼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자.
같은 구절에 대한 각기 다른 언어 번역본들을 찾아보니 어느 것은 일흔일곱(77)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나와 있고, 어떤 것은 일곱(7) 번씩 일흔(70) 번을 용서하라고 나와있다.
나로서는 지금 어느 것이 올바른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어느 것이 옳은 번역인가가 이 말씀의 요점이 아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곱(7)이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완벽을 의미하는 숫자, 즉 꽉 찬 숫자이다.
그러니 일흔일곱(77) 번이나 사백구십(490) 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칠(7)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고 있는 루카 복음서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4)

그렇다. 오늘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간단하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이시다.

두 번째 숫자 놀이를 해보자.
예수님께서는 왕에게 만 탈렌트를 빚을 진 사람과 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의 비유를 드신다.
왕은 만 탤런트의 빛을 진 이에게 갚을 것을 요구하였고, 빚진 이는 가능하지 않으니 선처를 봐달라고 애원한다. 그래서 왕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를 용서하고 빚을 탕감한다. 그런데 탕감 받고 나온 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난다. 보자마자 멱살을 쥐어 잡고 빚을 갚으라 한다. 빚을 갚지 못하는 동료가 엎드려 애원을 해보지만, 결국 감옥에 처넣고 만다. 이를 알게 된 임금은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이 빚을 탕감해준 사람을 감옥에 처넣었다는 비유이다.
여기서 탤런트가 얼마나 큰 돈인지, 데나리온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빚을 탕감 받은 자가 보여준 악랄한 모습 자체만 보더라도, 우리는 혀를 차며 만 탤런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에게 욕을 퍼붓기 쉽다.
그런데 탤런트와 데나리온의 차이를 알게 되면 그 분노는 더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탈렌트는 당시 유대인들의 중량을 재는 단위였다. 이것을 화폐단위로 환산하면, 1 달란트는 평균 30킬로가 좀 넘는 금의 값으로 계산 되었다 한다. 금값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1 달렌트가 금 30킬로의 값과 같다고 할 때, 만 탈렌트는 금을 30만 킬로를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데나리온의 단위는 어떻게 되는가?
데나리온은 일반적으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 평균치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1 데나리온의 6천 배가 1 탈렌트라고 한다. 그러니까 1 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보통 노동자가 쓰지 않고 6000일을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평균 임금 노동자가 16년 이상을 벌어야 모아질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 된다는 뜻이다.
즉, 왕에게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자가 백일치의 임금을 빚진 이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누군가를 비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메시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감사의 마음도 가지지를 못한다.
그러기에 남의 작은 잘못에도 너그러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반면 정말 옳지 못한 것을 보고도 눈을 감거나 피해버리는 서글픈 인간이 되고 만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우리의 허물 많은 삶을 용서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나 아닌 타인의 용서와 도움 속에서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용서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조금만이라도 올바르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감사할 일이란 부나 명예나 건강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뜻하지 않는다.
“남보다 부유하게 살게 해주셔서” “사고 중 나만을 살려주셔서”와 같은 감사의 기도는 바보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진정 내 마음과 영혼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 용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께 받고 있는 사랑과 용서의 체험이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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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데나리온을 가지고 용서를 하지 못했던 사람은 결국 자신이 만 탈렌트를 탕감 받았으면서도
감사의 체험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저 운이 좋았거나 임금이 바보라고 생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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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자라기를 원하는 곳에는 사랑을 심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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