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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스런 배경의 본질을 왜곡하는 용서의 자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5 조회수473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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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말씀은 용서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용서는 분명히 중요한 한 부분임을 알려 주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살인자는 하느님에게서 용서받아 평안해졌는데 도리어 피해자는 살인자를 용서하지 못하여 평안하지 못했다 라는 어떤 분이 글을 올려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주인공)은 용서를 하지 못했는데, 가해자인 살인범은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며 평안히 지내고 있는 것을 보고서 더 큰 분노와 더 깊은 상처로 갈등한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복음 말씀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12, 30 - 32) ]

이 말씀이 나오신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 말을 듣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 하고 말하였다. ...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제자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태오 122, 24 - 28)] 입니다.

<성령과 하느님의 영>에 우리의 영적인 눈과 마음을 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영(성령)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하시며 사탄이 사탄을 내쫓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마귀의 우두머리(악인의 우두머리)로 몰아 붙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우리)도 '악의 토양'은 '사랑의 토양'에 의하여 무너진다는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하늘 나라)에 대하여 예수님에게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말하지 못합니다.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하신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악행)의 우두머리가 아니십니다. 사랑에 의해 악행이 물러나게 하십니다. 사랑의 토양(성인의 통공)으로 악인의 토양(악인의 통공)이 물러난다는 진리의 가르침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당신의 길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 (위선자, 악인들)을 용서하시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이 결코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박시오' 하고 소리지를 만큼 용서를 못하는 마귀들의 우두머리가 아니십니다.

용서의 왜곡과 용서의 남용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성령(하느님의 영)을 거슬러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의 사랑의 토양이 오는 것을 막는 사람들이며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안에 <예수님 없는> 악의 토양이 인간의 고통을 수반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에서 보듯이 인간이 겪는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스런 배경"이 있다는 것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용서의 차원과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의 영(성령)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죄스런 배경"(마귀들)을 고치지 못하면 참된 평화와 참된 행복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사랑의 토양)가 온 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개인은 버려진 소외된 이들의 평화와 행복보다는 자신의 수덕과 평화를 위해 더욱 추구합니다. 거짓된 용서라는 유혹의 허울에 빠져 본질을 왜곡시켜 악이 뿌리내리게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개인의 '자기 버림자(수덕자)'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본질을 왜곡시키고자 하는 거짓된 자아의 십자가가 아니셨던 것입니다.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를 새겨 들어야 하는 인간의 땅입니다.불의한 교회의 문제는 <예수님 있어>로 계속 쇄신되어야 하고 불의한 공동체도 '예수님 없이' 본질을 왜곡하는 거짓된 용서로서가 아니라 <예수님 있어>로 회개하여 지속적으로 쇄신되어져야 하는 '영적인 몸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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