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계의 영성 - 2013.3.6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6 조회수40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3.6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신명4,1.5-9 마태5,17-19

 

 

 


한계의 영성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여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율법뿐 아니라 모세가 말하는 규정과 법규, 계명의 완성입니다.

 

사실 율법이나 규정과 법규, 계명은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규정과 법규, 계명을 통해 우리 인간의 한계를 정하시고,

한계를 알게 하시고, 한계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정 인간의 한계를 깨달아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한계의 깊이에서 하느님을 만나며, 한계의 훈련에서 참된 내적 자유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 중 예전에 인용했던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괴테의 깊은 예언자적 통찰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욕망의 통제가 없이 제멋대로

지나치게 무질서하게 무계획적으로 살아갈 때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과욕, 과신, 과속, 과음, 과식, 과찬 등 지나칠 과자가 들어가는 말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이 이를 입증합니다.

 


무법, 무질서, 무계획, 무기력, 무의욕 등 바로 한계가

무너진 혼돈 상태의 지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제멋대로 안팎으로 한계를 짓밟으며

산 죄인들을 장기간 한계 훈련을 시키기 위해 마련된 곳이 감옥입니다.

 


반대로 ‘천국에는 한계가 있다.’라는 말도 그대로 통합니다.


하느님이 천지창조 때 우선 하신 일도

혼돈에서 질서의 세상으로 한계를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승들의 매일 일과표 역시 한계를 정해줌으로

리듬 따른 역동적 질서와 조화의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자연 역시 산과 들, 강 등 한계가 잘 나뉘어져 있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바로 이런 한계가 우리를 살게 합니다.


우리 역시 모두 한계를 지닌 사람들이요

자기 한계를, 자기 자리를 깨달아 갈 때 평화로운 삶입니다.

 


바로 공동체 내에서 각자 한계를 깨달아 한계에 충실 하라 주어진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 율법이요 규정과 법규, 계명들입니다.


규정이나 법규, 율법의 실천으로 한계에 충실할 때

공존공생의 사랑과 평화의 실현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라 왔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가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율법이나 계명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자 한계 훈련에 절대적이기에

아무리 작은 계명 실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주님은 단호한 말씀하십니다.

 


모세 역시 주님과 똑같이 규정과 법규의 실천을 통해

한계의 영성에 충실 할 것을 신신당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바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규정과 법규를 잘 듣고 실천함으로

주어진 한계에 충실할 때 함께 살 수 있고 하느님이 주시는 하늘나라를

차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계의 훈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한계의 훈련에서 가능합니다.


하느님 주신 모든 계명들은 한계의 훈련 대상입니다.

 


우리의 정주, 수도승다운 생활, 순종의 서원을 비롯한 모든 수행들 역시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자 우리의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요,

이런 한계의 훈련을 통해 신장되는 우리의 자유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분별의 잣대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모든 계명을 충실히 실천하는 중에도

늘 사랑의 빛에 비추어 분별함으로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사랑의 동기에서 시작된 계명의 실천은 자유의 꽃으로 활짝 피어납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 바로 율법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계명의 실천에 활력을 넣어주는 게 바로 가톨릭의 전례입니다.

수행 중에서 참 중요한 것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전례의 수행입니다.


저는 오늘 1독서 탈출기에 후반부의 말씀에서 전례를 연상했습니다.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주어라.”

 


바로 미사전례의 역할입니다.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를 잊지 않고,

새롭게 상기하고 후대에 전달하는데 전례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는 미사와 성무일도 전례 수행을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계명 실천의 수행생활에 활력의 샘이 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계의 영성을 깊게 하시며 수행생활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