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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내림이 없는 사랑의 중개자 [사랑의 파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7 조회수421 추천수0 반대(0) 신고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마르코 12, 28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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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 '사랑의 이중계명'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면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느님사랑에서 이웃사랑으로 흐르는 '사랑의 내림'이다 할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오르는 '사랑의 오름'하고는 다르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사랑의 내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과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엄밀한 구분이 있슴을 설명합니다.

사랑에는 <인간에서 오는 사랑이 있고, 하느님에서 오는 사랑>이 있습니다. 인간의 육에서 나는 사랑(육에서 난 사랑)과 하느님의 영에서 나는 사랑(영에서 난 사랑)의 구분이 전자에 해당하는 <사랑의 오름과 후자에 해당하는 사랑의 내림>이다 할 것입니다.

더 간략하게 말한다면,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의 내림'이며 인간의 사랑은 '사랑의 오름'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느님이되시고 사랑의 주체가 인간이 된다는 점에서 '내림과 오름'을 구별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사랑의 주체인 '사랑의 내림'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입니다.그 반대로 첫째는 이웃을 사랑하고 둘째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사랑의 주체인 '사랑의 오름'으로써 '인간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구분하고자 하는 이유는 사람이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구별해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수렴하고자 하려는 사랑의 목적성이 아닌, 사랑의 방향성에 강조함에 있습니다. 이는 특히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밝히는데 주효합니다.

'사랑의 내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4, 7 참조)]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이 사랑입니다.이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육)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고, 하느님(영)에게서 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영에서 난 사랑을 가로막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이시며 예수님의 새계명을 폐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시며 예수님의 사랑이신 '영에서 난 사랑'을 마치 육에서 난 사랑,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으로 도외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을 심리학적으로만 해석해서 하느님의 계명 (예수님의 새계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가르치지도 말아야 합니다.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의 지혜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서도 '예수님의 반대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앙을 세상의 심리학적으로만 풀이할 때, 사람은 계명을 어기게도 된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하며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방향도 없이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목적으로 '예수의 공동체, 예수의 형제회'가 되어지는게 아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의 내림으로 사랑을 하느님에게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중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육에서 난 인간의 사랑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중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여(자신을 낮추지 않고) 하느님의 영에서 난 하느님의 사랑을 폐하는 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의 중개자가 아닌 파괴자로 전락하고 말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함은 '영적인 나태'에 기인합니다.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만 오르려고 하는 '사랑의 수덕'은 예수님의 사랑 사랑의 방향성을 잃고 말게 됩니다.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게 영적인 나태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영성은 예수님과 같이 아래로 내려갈 때에 그 아래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일치되며 예수님과 함께 위로 오르게 된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래에서 수고하시는데 예수의 형제, 자매들은 위에서 머무르며 수고하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상실해 버립니다.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 바로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목적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랑의 내림'에서 사랑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도 '사랑의 모습'을 띄지만 그것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예수님의 사랑'까지 집착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사랑'을 도외시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하느님께 대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거짓된 - 사랑의 중개자>는 다음의 예수님 말씀을 결코 따르지 못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곧 하느님께 해 주는 것, '첫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에 수렴됩니다.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영적 나태에 머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곧,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퇴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이는 사랑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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