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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중심, 성장, 소통- 2013.3.8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8 조회수313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3.8 사순 제3주간 금요일 호세14,2-10 마르12,28ㄱㄷ-34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중심, 성장, 소통-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평생 물으며 방황하다 인생 마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은 맹목(盲目)이고

이웃 사랑 없는 하느님 사랑은 공허(空虛)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이 이상이라면 보이는 이웃 사랑은 현실입니다.

하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갈 때 온전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뱅쿠버에서 환대해 줬던 아름다운 부부에 대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며칠 전 인용했던 남편인 형제의 고백입니다.

 


“아내는 예쁜 것도 미운 것도 없고, 열렬한 사랑도 없어도,

  늘 함께 있어 줘 고마울 뿐입니다.

  …또 저희는 가끔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지?

  우리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말하면

  ‘지금 여기서 잘 살면 되지’ 말하며 서로 피식 웃고 대화를 끝내곤 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성숙된 부부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부부임이 분명합니다.

 


또 두 가지 일화도 소개합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어느 선배 사제의 혼잣말이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사제 모임에 예수는 없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묵묵히 듣고만 계셨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서울 대교구 전체 사제 모임에 다녀 온

어느 사제가 기고한 글의 일부가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자칫 가장 본질적인 하느님을, 예수님을 빼놓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30-40대 부부 400쌍을 대상으로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설문조사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도 부부의 생각은 딴판이었습니다.

남편은

공기 좋고 한적한 곳에서 아내와 많은 시간 보낼 것을 희망하는 반면

아내는 서울 근교나 대도시에서

친교모임과 쇼핑을 즐길 것을 희망한다는 것입니다.

 


은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편은 건강(96%) 다음으로 부부관계(73%)를 꼽는 반면,

아내는 건강(99%) 다음엔 돈(64%)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읽는 순간 깨달음처럼 스친 ‘아, 하느님이 빠졌다.’라는 생각입니다.

하느님 빠진 이런 희망은 반쪽일 뿐입니다.


하느님께 희망과 중심을 둘 때 반석위의 삶입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순위도 하느님 믿음, 건강, 돈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세 측면에 걸쳐 묵상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크게 부각됩니다.

 

 

 

 

 



첫째, 중심(中心)의 측면에서의 묵상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중심을 둬야 합니다.

중심이 없어, 중심을 잃어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하느님 중심이냐 자기중심이냐가 갈림길입니다.

 


자기가, 돈이, 일이 중심이 될 때 이들은 우상이 되고

우리는 저절로 폐쇄적이 되고 부자유로워지고 시야도 좁아집니다.


끊임없이 불안과 두려움에 휘둘립니다.


내적평화와 안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중심으로의 전환이 바로 회개이며 바로 이때 안정과 평화요

개방적이 되고 자유로워지고 영적시야도 넓어집니다.

 


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의 축복을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둘째, 성장(成長)의 측면에서의 묵상입니다.

 


사랑도 성장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성장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외적목표를 향한 외적성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한 목표로 한 내적성장, 영적성장입니다.

 


외적성장은 끝나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내적성장과 내적성숙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죽을 때까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사랑의 내적성장에 성숙으로

자비로운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이런 하느님 목표보다 더 고원하고 확실한 목표는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 목표가 없으니 성장도 없고

남는 것은 허무와 무의미, 타락과 정체로 인한 자기상실뿐입니다.

 

 

 

 

 



셋째, 소통(疏通)의 측면에서의 묵상입니다.

 


사랑은 소통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과의 소통이요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 때 이웃과의 소통입니다.

 


서로 간의 소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여 대부분 함께 사는 일을 힘들어 합니다.

 

하느님과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은 함께 갑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잘 되어야 이웃과의 소통도 잘 됩니다.

 


바로 이를 위해 사부 성 베네딕도는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말라’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와 미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공동체 형제들 상호간의 소통도 원활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이 잘 되어야 함께 사는 일도 잘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 이웃과의 소통의 중심에

‘소통의 대가’인 십자가의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과의 소통은 물론 이웃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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