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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과 아버지께 회개하는 탕자의 고백 [공동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9 조회수382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의 사랑을 말한다고 해서 듣기도 거북하며 도리어 죽음이 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예수님의 사랑이 죄를 드러낸다고 해서 죽음이 도리어 지배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이 죽음이며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이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의 모상이 되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에페 3,19 참조)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 회개하는 공동체의 고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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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은총이 많아지도록 우리가 계속 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움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이끌어야 하는 계명이 나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5장 - 8장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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