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이웃에게/신앙의 해[11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0 조회수327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이스라엘] 올리브산 성모 무덤 성당 입구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어리석을 정도로 착한 아버지이기에.
재산을 물려받자 곧바로 객지로 떠난 작은아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가출이었다.
돈을 손에 쥔 그에게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까운 돈을 물처럼 다 써 버렸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재산을 달라고 했을 때
‘몽땅 날릴 것’을 그러면서도 그런 후에 정신 차리고 돌아올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예상대로 돈이 떨어진 작은아들은 힘이 없었다.
돈 힘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일 게다.
인간이 비참함을 체험할 때 은총은 시작된다고 했다.
작은아들은 처참한 상황에서 비로소 아버지를 떠올리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관계가 있다나.
하나는 깨어질 수 있는 관계, 다른 하나는 깨어질 수 없는 것일 게다.
이를테면 직장에서의 사장과 직원은 깨어질 수 있다.
이는 서로 이해타산에 따라 결합되거나 강제로 구속되는 경우이니까.
곧 계산적이거나 강압적인 관계일 테니까.
반면에 부모와 자식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 관계일 게다.
아무리 연을 끊는다 해도 자식인 이상 어디까지나 자식으로 남는다.
이러한 관계는 어떤 계산에 따라 결합된 것도, 강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작은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다.
그는 깨어질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굶어 죽을 정도의 알거지가 되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이때 아버지의 행동은 그가 아들과의 관계를 끝까지 깨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저 멀리 돌아오는 아들을 미리 알아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은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며 잔치를 베푼다.
곧 아들은 여전히 깨어질 수 있는 관계인 ‘종’이 되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깨어질 수 없는 관계인 ‘아들’로 여겼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어떤가?
결코 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 오랜 기간 교회를 떠나 있었다 해도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실 게다.
우리가 하느님을 원망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끊으려 해도
그분만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내쫓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리라.
그분은 우리와 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곧 아버지이시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세상은 부모의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를 않는다.
자식 농사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잦은 잔소리와 강요,
심지어는 윽박지르고 호통을 쳐도 자식 일 만큼은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처럼,
부모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의 많은 부모님들의 고민거리이다.

하느님의 마음도 바로 부모의 이러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가 당신께 돌아오기를, 그리고 당신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라시지만
우리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하느님께서는 안타까운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가 잘되도록 가르치시고 설득하시며 때로는 강하게 꾸짖으시지만.

세월과 함께 믿음의 생활이 더하여지면서
이러한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깨달아 진다.
신앙의 해에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분을 향해
조금 멀어진 발걸음을 그분께로 되돌리자.
그러면 타락한 아들이 돌아온 사실만으로도 기쁨을 가눌 길 없어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이렇게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여
이웃에게 이걸 나누어 줄 수 있다면 하느님은 더더욱 기뻐할 것이리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