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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3/11일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1 조회수424 추천수9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3월11일 월요일 복음묵상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요한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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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는 말에 대해 잠시 묵상해 본다.

믿는다는 말은 우선 그 대상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믿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뢰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조차 쉽게 깨지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다.
이는 불완전한 인격체들 간의 만남이 가져다 주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보이고 만져진다고 해서 그리고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누군가가 보여준 구체적인 삶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는 것도 없다.
들리는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것은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세계는 논리를 뛰어넘는다.
이론적으로 설명을 다할 수 없는 세계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불안과 평화와 같은 삶의 체험들을 통해서 그분의 내미신 손을 느끼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우리의 곁에 계시며 손을 내밀고 계시다.
다만 그 내미신 손을 느끼느냐 마느냐는 각자의 삶이 만든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달라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 안에서 그분의 내민 손을 잡기까지 서로가 다른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에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하느님을 빨리 만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해서는 안 된다.
그분께서 부르셨기에, 그것도 애타는 마음으로 부르셨기에 그분 앞에 서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뜻한다.
모자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완전한 응답으로 그분 앞에서 살 수 없다.
수없이 넘어지고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일은 아니다.
그분께 의탁하는 마음이 있는 한, 하느님께서 모든 길을 이끌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가 완전하신 하느님이라는 것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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