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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2. 죽음은 인간을 선택 [왕실의 강론과 글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1 조회수39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요한 4,43 -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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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에서의 첫번째 표징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표징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요한 2, 1 - 12)]

오늘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는' 표징은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와 같이 카나에서의 두번째 표징입니다.첫번째와 두번째 표징 모두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보게 됩니다.그것은 '믿음의 순종'이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표징에서 물독에 물을 채워라며 말씀하셨고,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두번째 표징 역시 [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입니다. 이처럼 둘 다 모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순종'을 보여 줍니다.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먼저는 청함이 있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나 왕실 관리나 모두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에 해당됩니다.먼저는 예수님께 청원함이 있었다는 현실의 실재입니다.간절한 마음의 청원함이 없이 세상(공동체)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예수님 없이' (하느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성 교회는 올바르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줍니다. 

<교리서 397 악마에게 유혹을 받은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창조주를 향한 신뢰가 죽게 버려두었으며, 자신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첫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 뒤의 모든 죄는 하느님에 대한 하나의 불순종이 되고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 될 것이다>   

<교리서 398 이 죄로 인간은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함과 동시에 하느님을 무시하였다. 곧,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을 거슬렀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처지가 요구하는 것을 거슬렀으며, 결국은 자신의 선익을 거슬렀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그러나 악마유혹으로 인간“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하느님처럼 되기를”원하였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선택합니다. 인간은 자력 구원을 꿈꿉니다. 인간이 하는 일에서 아무 것도 하느님께, 예수님께 청원하지 않고- 하느님 없이, 예수님 없이 인간 자신의 마음속에 그분에 대한 신뢰를 죽게 내버려두고 오직 인간 자신의 자유를 남용함에 따라서 인간의 자력으로 고통과 영광을 꿈꾼다면 그런 것들은 악마의 유혹에 빠집니다.

카나에서 포도주(예수님의 사랑)가 떨어졌거나, 카나에서 아들이(공동체가) 병들었거나 할 때, 인간의 본성은 "죄스런 배경의 본질"을 남들에게 숨기기에 재빠르게 움직이려고 하는데서 더 큰 죄악에 속박되어지기도 합니다. [죄는 자기(공동체) 안에 숨어있고 악은 자기(공동체) 곁에서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참조)]

하지만 자신(공동체)의 전부를 하느님께 드러내어 하느님의 자비의 은총으로 구하는 회개를 한다면 하느님 있어, 예수님 있어로 바뀌어 집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 숨기면서 드러내지 않으면 언제나 '속에 있는 죄는 성장하게 되고, 악은 죽음으로 끌고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에 일치(결합)해야 잔치 집의 물독(공동체)의 물이 포도주로 변화하며, 왕실 관리의 아들(공동체)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죄의 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하느님께) 드러내지 않습니다.인간 자신을 선택하는 '자유의 남용'으로써 <예수님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을 청원하지 않는 '믿음의 불순종'을 나타냅니다.  



[  은 총  ]

교리서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신다.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고자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뒤에는 활기를 주려고 우리의 뒤를 따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조> 게시글 ; 꽃동네1. 버려진 이들을 또 버리는 은총의 탕진 [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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