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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낫기를 원하느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69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사순 제4주간 화요일


<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복음: 요한 5,1-16






구세주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ev) 작, (1410-1420)


     < "낫기를 원하느냐?" >

           혜민 스님에게 이제 서른이 되는 한 여자가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직장에서도 미운 사람이 생기고, 삶의 의미도 무언지 모르겠고... 그래서 새로운 진로를 위해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 중인데... ”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 분에게 말을 끊고 혜민 스님이 느닷없이 되물었습니다.

애인 있으세요?”

그 여자는 놀라서, “...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여자 분이 솔로로 서른 정도 되면 많은 분들이 여러 고민을 하고 되지만, 연애를 하시는 게 제일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우 날카로운 대답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일을 위해서, 여자는 사랑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사랑을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실제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 채 당장 앞에 놓인 눈에 보이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38년이나 벳자타 연못에 뛰어들어 병을 고치려는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사실 그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이 사람에게 믿느냐?”라고 물어보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바로 무엇을 원하느냐입니다.

낫기를 원하느냐?”

병자가 38년씩이나 벳자타 연못에서 물이 흔들리기를 기다렸다면 당연히 낫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의 질문은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너는 벳자타 연못에 가장 먼저 뛰어들기를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진정 낫기를 원하는 것이냐?”

이 병자는 처음에 원했던 낫기를 원한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드는 것만을 원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노처녀가 결혼하는 것이 가장 시급함에도 자기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당장 눈에 보이는 직장의 문제로 핑계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처녀가 결혼하게 된다면 참으로 행복해질까요? 아이를 낳고 또 삶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미워지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본인 스스로 깨달아야합니다. 결혼하는 것인지, 아니면 참으로 행복해지는 것인지. 지금 눈앞에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어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저는 행복해지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는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돈도 많이 벌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저의 원의를 보시고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모두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도 포기하고 돈 버는 것도 포기하고 사회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야망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저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싶었습니다. 진리를 깨우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책도 읽고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공부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것으로는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저의 행복을 위해 사제의 길로 불러주셨고, 참 진리를 알게 해 주시기 위해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 참 행복이고 참 진리를 깨우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장 내가 행복하고 또 더 알게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눈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가끔 비가 오면 달팽이와 지렁이가 길 위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비가 그친 상태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길 한가운데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달팽이를 봅니다. 저는 걷다가 달팽이는 들어서 나무에 붙여주고, 아직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나뭇가지로 흙이 있는 곳으로 던져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개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찮은 미물도 살고 싶다는 것을 압니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가 길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서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이야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면 어떻게 느끼실까요? 하느님도 우리가 살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소화 데레사는 자신을 계단을 올라가지 못하고 밑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어린 아기로 비유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때 하느님은 안쓰러운 마음에 소화 데레사를 번쩍 들어 맨 앞에 올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의 계단을 오르거나, 베짜타 연못에 뛰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것을 하기를 원하고 있느냐입니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느님은 그 사람의 원의를 절대 그냥 지나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즉 행복, 사랑, 기쁨, 평화 등을 원합시다. 내가 행복해지기만을 원하시면 하느님은 가장 빠른 길로 그 목적에 도달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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