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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의 마음/신앙의 해[11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346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이스라엘] 올리브산에서 본 예루살렘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기에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벳자타는 기원전 2세기경, 성전에 맑은 물을 공급하려고 만들었단다.
그 연못은 평상시에는 물이 잦아들었다가 어느 한순간 물이 분출하는 곳이다.
그곳 주랑 안채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이도 있었다.
 

왜 이토록 많은 병자들이 못가에 모여 있었을까?
예수님 시대에는 벳자타 못에 이따금 천사가 내려오면 물이 출렁거리게 되는데,
그 순간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벳자타 못은 모든 병자에게 ‘희망의 못’이 되었다. 
 

그러나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앓고 있는 이에게는 ‘절망의 못’일 수밖에 없다.
물이 출렁거릴 때 가장 먼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동작이 빠른 이,
곧 덜 아픈 사람이다.
많이 아프면 아플수록 일등일 수 있는 가능성은 적기에.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라고 물으셨다.
역시 우리 예수님은 뭔가가 달라도 달랐다.
예수님은 1등만 인정해 주는 ‘절망의 못’ 벳자타에서
꼴등의 삶을 살고 있었던 어떤 병자를 도와주신 것이다.


그는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그 오랜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앓고 있던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요한 5,8-9)’
 

벳자타 못 주위의 병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물속에 뛰어든 이 만이 그 병이 낫는다는 것은 민간 신앙이었고,
그 믿음은 세속의 이치와도 너무나 닮았다.

우리의 참 신앙은 당시의 이런 세속의 민간 신앙과는 참으로 다를 게다.
세속의 1등주의 이치와도 분명 다르리라.
믿음은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의 태도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 것이다. 
 

그런데 물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병자들이 벳자타에 모여들었단다.
그 못은 사실 우리 곁에도 있다.
애절한 믿음으로 그분께 다가가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님께서는 1등이 아닌 꼴등도 생각하신다.
아니 그런 이를 가장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벳자타 연못의 가장자리에 모여 있는 많은 이를 떠올려 본다.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천사가 내려와 ‘물을 흔들 때’ 제일 먼저 뛰어들면 어떤 병도 낫는다고 믿는 이들이다.
물이 움직이는 순간, 함께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도 상상해 보자.
하지만 기적은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과 좌절을 느끼며 물에서 나왔겠는가?
나도 너도 우리의 대부분이 그렇게 나왔을 게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토록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을 때에
당신의 자비하신 마음으로 치유해 주신다.
그러나 이러한 치유의 은총이 있기까지는
때로는 서른여덟 해 같은 기나긴 시련의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니 더도 될 수도 있을 게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이 시각에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라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낫기를 바라는 소망보다
그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리는 인내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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