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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12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713 추천수1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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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R) - 요한5,1-16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해방과 파스카의 날인 안식일>

 

 

    예루살렘의 ‘양 문’은 요즘은 ‘스테파노’ 성문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문은 오늘날 예루살렘 동쪽에서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 동쪽에서 ‘양 문’ 즉 ‘스테파노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 100미터 쯤 걸어가면 성 안나 성당에 이르는데, 바로 그 자리가 벳자타 못이 있던 자리입니다.

 

    벳자타라는 말은 ‘자비의 집’ ‘새로운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벳자타 못은 오늘날 수영장의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벳자타 못의 길이는 120미터 폭은 6미터 정도였는데, 이 못은 5개의 주랑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벳자타 못 아래 깊은 곳에는 두 개의 물 저장소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저장소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늘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벳자타 못의 치료용 물은 바로 이 저장소로부터 공급되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 시간에 맞춰 땅속에 있던 샘에서 물 저장소를 통해 벳자타 못으로 물이 솟아올랐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 순간이 치유 과정에 특별히 도움을 준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의 움직임과 병자의 치유는 천사의 등장과 개입으로 인한 효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벳자타 못가에는 장장 38년 동안이나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 하나가 누워있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과 마주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는 환자의 말을 통해 그의 병은 꽤나 심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증의 중풍병자였을 것입니다.

 

    참으로 가련하고 혹독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년 2년도 아니고 장장 38년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의 평균 수명 길어봐야 40~50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환자는 거의 평생을 병고에 시달렸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단 하루라도 내 발로 한번 서보는 것, 그것은 아마도 평생에 걸친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마음껏 한번 허리 펴고 하늘 한번 올려다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죽을힘을 다해 벳자타 못까지 기어온 그였습니다. 마음으로는 수백 번도 타이밍에 맞춰 물로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출렁거릴 때 그를 물로 넣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힘겹게 벳자타 못까지 다가선 그였지만 더 큰 절망과 상실감에 힘겨워하고 있던 그였습니다.

 

    이런 벳자타의 환우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서십니다. 그저 말씀 한 마디로 그의 평생에 걸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런데 하필 새 삶을 얻은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당시 안식일 규정이라는 덫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몸에다 족쇄를 채우고 살아가던 유다 지도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법을 통해 자신들 스스로의 손발도 꽁꽁 묶어버렸지만, 호시탐탐 백성들에게 올가미를 채우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하필 그들 앞으로 치유된 환자가 자신의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즉시 추궁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 환우의 치유를 통해 당시 만연되어있던 안식일 규정의 대중적 오류와 모순을 용감하게 지적하십니다.

 

    당시 안식일 법에 따르면 아무리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목말라하는 동물에게는 물 정도는 먹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물이 죽을 위험에 처하면 살려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동물보다 훨씬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인간은 왜 살려낼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중증 환우들을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치유활동은 결코 안식일 법에 저축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쉬는 날이라는 의미도 지니지만 해방과 파스카를 기념하는 의미도 지닙니다. 당시 안식일에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내신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기념했습니다.

 

    그렇다면 병으로부터 한 인간을 해방시키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건너오게 하는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안식일에 적극 권장되어야 할 일이 틀림없었던 것입니다. 치유행위야말로 안식일의 정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일이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는 우리 인간들을 모든 죄와 억압과 그릇된 오류에서 해방시키기고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 서게 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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