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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805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3월 12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Do you want to be well?"
"Rise, take up your mat, and walk."
(Jn.5,6,8)


 
제1독서 에제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복음 요한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여러분 덕분에 시카고에 잘 도착했다는 보고 드립니다. 어렸을 때에는 정말로 비행기를 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타봤다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높은 곳을 날아서 간다는 것 또한 아주 빨리 간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비행기 타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이제는 비행기 타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작년에 남미 다녀올 때 너무 오랜 시간을 탔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비행기 타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짐입니다.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그래서 이번 시카고 행은 특히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타고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시카고에까지 가서 특강을 한다는 것이며, 교우들에게 더욱 더 주님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단순히 12시간이 넘는 비행의 힘듦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던지요.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순간의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목표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만을 쫓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벳자타 연못 옆에 38년 동안 앉아 있었던 병자가 그러했지요. 그에게 예수님께서 소원을 묻습니다. 우리들은 그의 소원이 당연히 건강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38년 동안이나 건강 때문에 고생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물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소원은 달랐습니다. 그의 소원은 연못이 출렁거릴 때 자기를 연못 속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처음으로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출렁일 때 처음으로 들어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거든요.

이 소원이 과연 근본적인 소원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미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건강이 아니라 오히려 미신에 집착하는 벳자타 연못의 병자이지요. 이처럼 우리 역시 가장 근본적인 주님의 구원이 아닌 엉뚱한 것만을 청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이 과연 벳자타 연못의 병자와 무엇이 다를까요?

그런데 병의 치유 역시 근본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병자를 만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우리의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삶.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도 이제 막바지를 치닫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해보셨으면 합니다.

 

배려라는 말에는 ‘생각할 려’자가 들어간다. 상대를 생각하는 행동이 공감으로 가는 지름길이다(조세형).



시카고에 드디어 왔습니다. 여기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보이네요.



혹시~~~

시카고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아주 뚱뚱한 경찰과 함께 조그마한 경찰견 한 마리가 제 곁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상한 물건도 없는데 저를 향해 다가오는 경찰과 경찰견. 괜히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머리 회전을 시킵니다.

‘내 가방 속에 혹시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누가 내 가방에다가 이상한 것을 넣은 것 아냐?’

그런데 이 경찰과 경찰견은 제 옆을 지나서 멕시코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어디로 데려가더군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과 경찰관을 보니까 특히 우리나라가 아닌 먼 나라에 있다 보니 괜히 위축되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죄가 없는데도 이렇게 불안한데 죄가 있으면 어떨까요?

그러면서 하느님 앞에서도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먼 훗날 주님 앞에서 섰을 때 과연 떳떳하게 있을 수 있을까요? 전지전능하신 분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벌벌 떨 수 있는 상황인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죄까지 가득 지은 나라면 도저히 그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떳떳할 수 없습니다. 단지 조금이라도 서 있기 위해 죄를 짓지 않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주님 옆에 있고자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뜻깊은 사순시기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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