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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동네3.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핑계의 도식]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12 조회수43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요한 5,1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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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중증 병자들은 평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아 갑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성한 몸으로 살고 싶은 간절한 염원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사람은 '죽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로 이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죽기 전까지는 단 한번만이라도 성한 몸으로써 살고 싶은 그 염원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성한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서 조금씩 죽어간다고 하겠지만 그들에게는 간절한 청원의 마음이 사무쳐 있는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한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차라리 빨리 죽는게 고통이 덜 하다' 하고 말하겠지만 그들에게는 '고통이 없어져서 사는 것을 단 한번만이라도 염원한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원하는 심정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성한 사람들은 아쉬울게 없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사람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니 험한 병자들 또한 죽는 것에 대하여 별달리 측은한 마음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성한 사람도 결국 죽는 것이고 병자들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의 고통을 안고 죽는 사람과 자기 몸의 평안을 안고 죽는 사람은 실로 죽음에 가서는 많이 다른 것입니다.제 몸이 성한 사람들은 불치의 병을 지니기 까지는 결코 몸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등한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에 대하여서도 도외시합니다. 평생을 중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고통이 없는 평화를 청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번만이라도 '성하게 살기 위해서 삽니다' 생명의 존귀함을 본래 지닙니다. 

생명과 평화는 그들이 염원하는 평생의 기도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고통과 죽음으로 학대하는 자들은 과연 사람이다고 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염원을 짓밟는 공동체도 예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통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라고 당연한 도식을 정한 공동체는 '예수의 공동체'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삯꾼들은 자기만을 알며 '죽으면 그만이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들은 고통없이 살고 싶은 평생 '염원의 기도'를 지닌 사람들임을 소중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합니다.삯꾼이 지배하는 기업체와 예수의 공동체는 이렇게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고통에 민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 고통에 일치를 이루십니다.이것이 "그리스도적 고통"이다고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일러 주십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다' 고 말하지만 거친 삯꾼은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밥과 이불'인 주님의 은총을 가지고 <고통없이 살고 싶은 염원의 기도를 지닌 이들>을 도리어 학대함으로써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합니다. (은총의 탕진)

그러나 이런 거친(학대하는) 삯꾼도 이 곳의 어떤 '빽'만 있다면 철저히 보호를 받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떠나는 사람들의 이유는 아주 문제를 삼아도, 거친 삯꾼이 이 곳에 남아 있는 것들에는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본질의 왜곡됨이 심각하다 할 것입니다.이는 핑계의 도식이 버려진 이들에게 (중증과 버려진 탓)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이들 때문에 주님의 은총이 내려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적 고통'은 버려진 그들의 고통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적 고통'이 없는 공동체는 결코 '예수의 공동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적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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